[내가 사는 마을의 전래] 대모산 약수터가 어떻게 생겼을까요?

 


 

옛날, 어느 해였어요. 봄부터 여름까지 비가오지 않아 땅이 바짝 말라갔어요. 농부들은 씨앗을 뿌려도 싹이 나지 않고 자라지도 않았어요.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 사람들도 서로 다투고 살기가 힘들어졌어요. 임금님은 시름에 잠겨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하루이틀도 아니고 걱정이 되어 궁궐에만 있을수없구나.’ “여봐라.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겠다. 어서 채비를 갖추어라.” 임금님이 명령을 내렸어요. 신하들은 서둘러 채비를 갖추고 지팡이도 잊지 않았어요.

 

임금님께서 궁궐 밖을 나가실 때는 늘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셨거든요. 이 마을 저 마을을 살피시던 임금님은 한 마을(지금의 헌릉근처)에 도착하셨어요. 벼는 비틀어지고, 고추, 오이, 토마토가 열리지 못하고 말라있는 곡식들을 보신 임금님은 마음이 아팠어요. “차마 바라 볼 수가 없구나.”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시며 지팡이로 땅을 내리쳤어요. 그러자, 뒷산 (대모산) 중턱에서 샘이 터져 나왔다지 뭐에요! 그리고 갑자기 비까지 솨아~” 내려 타들어가던 곡식들이 푸들푸들 살아났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감탄을 하며 임금님 만세. 고맙습니다.”하며 모두들 좋아서 덩실 덩실 춤을 추었어요.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을 하여 그 해 가을은 풍년이 들었대요. 그 후, 마을사람들은 산을 오르며 물을 떠다마셨고, 나물을 캐거나 땔감을 할 때도 물을 마시며 임금님 이야기로 입을 모았어요. 이 소식은 온 고을에 퍼져 임금님을 더욱 받들어 모셨고 임금님의 뜻으로 물이 솟았다며 샘의 이름을 성지 약수터로 부르게 되었답니다. 또한 아주 먼 옛날 할미산(태종비 원경왕후) 이라고 부르다 태종이 헌릉에 묻히며 대모산으로 명하셨대요.

 

산자락이 마을(일원본동)을 아늑하게 감싸 안았다는 모습이 어머니의 품 같다는 대모산의 의미도 있답니다. 

 

 

 

해당 글은 일원본동주민 상훈씨가 쓴 글이며,  책 읽는 마을 만들기사업 일환인 흥겨운 북(BOOK)소리 제3집(2018년 발행)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