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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모이는 도시,
미래를 그리는 강남

“진정한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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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일자2020-01-07
  • 조회수1072
[新목민관 열전] 정순균 강남구청장이 말하는 ‘품격 도시론’

“진정한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1년 반 준비 끝 도시 브랜드 ‘너 나 우리 강남’ 선보여
공동체·환경 전면에… 성장에 철학 담아야 국제도시 가능

정순균 강남구청장
정순균 강남구청장이 2019년 12월 강남구 대치1동 문화센터에 마련된 커뮤니티 공간에서 자신의 구정(區政) 철학을 밝히고 있다.

서울 영동대로는 강남구를 수직으로 가로지른다. 영동대교에서 시작해 삼성동 코엑스를 지나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인근까지 이어진다. 삼성동 현대차 신사옥을 필두로 1조7000억원 규모로 ‘영동대로 지하공간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등 쉴 새 없이 주변 풍경이 바뀌는 길이다. 

그런데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이 길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를 눈치챘을지 모른다. 길가를 가득 메우던 태극기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태극기가 내려간 자리엔 세계 각국의 국기가 내걸렸다. 공사장 가림막마다 새겨져 있던 대형 태극기는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갈음됐다. 2018년 7월 정순균 강남구청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생긴 변화다.

태극기 게양은 ‘안보 1번지 강남’을 내세운 전임 구청장의 역점사업이었다. 전임 구청장은 “우리 국민의 안보불감증은 그야말로 처절한 수준”이라며 각종 태극기 게양 캠페인을 벌였다. 이런 지역에서 1995년 4대 지방선거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 강남구청장이 나왔으니, 바뀐 풍경을 두고 자칫 ‘전임 구청장 흔적 지우기’라는 이야기가 나올 법했다. 

그러나 정작 정순균 구청장의 고민은 국내 정치지형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 있는 듯했다. 12월 3일 서울 강남구 대치1동 문화센터에서 만난 정순균 구청장은 “강남이 한국의 대표도시를 넘어 국제도시가 되려면 우리(태극기)만 강조해선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우리도 해외에서 태극기를 보면 뭉클하지 않나. 강남을 찾은 외국인들이 자국의 국기를 보고 친근감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 정순균 구청장의 발상이었다. 

2020년부터는 구체적인 강남 브랜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정순균 구청장이 건넨 명함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었다. 명함 한 면이 다른 정보 없이 브랜드 로고로만 채워져 있다. 로고에 들어간 영문 알파벳 ‘Me Me We Gangnam’은 나(Me), 너(Me), 우리(We)가 함께하는 강남이라는 뜻이다. ‘당신은 또 다른 나’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Me’를 반복했단다. 타원형 이미지는 나무인 동시에 사람 얼굴을 의미한다. 

정순균 구청장은 “이제는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품격을 지향할 때”라고 강조한다. 도시 브랜드를 재정립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이다. “강남의 지향점을 ‘공동체’로 설정하고, 이를 표현한 게 ‘Me Me We Gangnam’”이라는 것이다. 정순균 구청장을 만나 그의 ‘품격 도시론’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변화에는 완충기간이 필요하다”

뉴욕의 ‘I♡NY’ 등 다른 도시 브랜드보다 공동체를 강조했다. 
“강남은 그냥 둬도 알아서 잘 크는 도시다. 그런데 알아서 잘 크는 사이 빈틈도 생겼다. 강남을 향한 부정적 이미지가 그렇다. 혹자에게 강남에 산다고 하면, 부러워하면서도 속으로는 ‘깍쟁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또 부자 동네라는 인식과 달리, 경제적인 불평등도 적잖다. 서울 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생계급여를 받는 분들이 여덟 번째로 많다.”

강남 사람들이 ‘깍쟁이’로 비치는 까닭을 풀이한다면?
“예를 들어 강남구는 2019년 한 해 2700억원 상당을 서울의 다른 자치구 에 넘겨줬다. 강남구의 재산세 징수액(5705억원) 가운데 절반(2852억원)을 서울시가 가져간 뒤 25개 자치구에 똑같이 배분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왜 우리가 낸 세금을 다른 동네에 쓰느냐’고 항의하는 주민분들이 계신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 돈을 주고 우리가 얻는 이미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답한다. 기왕 내야한다면 ‘마더 시티(Mother City)’로서 우리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이웃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도시가 어떻게 국제도시를 꿈꿀 수 있겠나.”

서울시는 구세(區稅)인 재산세 일부를 시가 거둬 25개 자치구에 다시 나눠주는 ‘재산세 공동과세제도’를 2007년 7월부터 운용하고 있다. 

구민들이 쉽게 설득되진 않을 것 같다.
“잘 알고 있다. 더구나 나는 23년 만에 민주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강남구청장이 되지 않았나. ‘진보 좌파가 구청장이 되더니 뭐든 자기 식대로 바꾸려고 한다’고 걱정하시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변화를 추진하더라도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하려고 한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완충기간을 충분히 두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 생각만 밀어붙이면 꼭 탈이 나더라. ‘Me Me We Gangnam’ 브랜드도 취임한 지 1년 반이 지나서야 추진한다. 취임 직후 약속드린 ‘품격 강남’에 1년 반 만에 ‘공동체’란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브랜드 정책의 완급 조절까지 고려한 셈이다. 사실 정순균 구청장은 정치권에서 브랜드 컨설팅 전문가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동안 기자로 활약하다 2002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언론특보로 정치에 입문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국정홍보처 차장·처장으로 일했고, 참여정부 후반기에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18대·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언론특보와 고문을 맡았다.

미미위강남 스타일브랜드

 강남의 새 스타일 브랜드 ‘Me Me We Gangnam’.
2020년부터 강남구 곳곳에 배너 형태로 소개될 예정이다.
 
강남의 또 다른 ‘아픈 손가락’이 있다면.
“환경 문제다. 생활이나 주거 환경에서 가장 강남답지 못한 모습을 노출한다. 대표적으로 하수구 악취 문제다. 강남의 하수처리 시스템은 비가 올 때 빗물과 건물 정화조에서 나오는 물이 섞이게끔 만들어져 있다. 비가 그치면 오수(汚水)와 섞인 빗물이 그대로 하수도에 고이면서 악취가 생긴다. 현재 169개 맨홀‧토구‧정화조‧배수조 실태조사를 토대로 악취지도를 만들고, 발생 원인별로 분류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신사동 가로수길 일대 21곳에 악취저감시설을 시범 설치하기도 했다. 분석결과가 나오면 2022년까지 71억원을 들여 악취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더강남’ 가입자 수, ‘내 손안에 서울’ 추월

 
정순균 강남구청장
 
정순균 구청장은 ‘필(必)환경 도시’를 강남의 4대 핵심가치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각종 재난사고나 미세먼지 등 도시생활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뜻한다. 정순균 구청장은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로 대표되는 ‘필(必)환경세대’의 외침처럼, 이제 환경은 ‘지키면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할’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삼한사온’ 대신 ‘삼한사미’(3일은 추위, 4일은 미세먼지)가 대세다. 
“잘 대응하려면 먼저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미세먼지 측정기 45대와 사물인터넷 통합센서 100대 등 총 145대를 설치해 미세먼지 측정의 정밀도를 끌어올렸다. 정밀도를 높인 덕에 미세먼지 고농도 지역을 우선 청소하는 대응체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먼지흡입차와 간선도로물청소차도 각각 6대에서 10대로 늘렸다. 또 측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구민들에게 제공해 미세먼지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강남구는 2019년 9월 관내 정보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인 ‘더강남’을 출시했다. 미세먼지 측정기 145대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더강남’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이밖에 최신 관광정보와 개방화장실·주차장 등 편의시설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장난감·책 등 물품을 이용자들이 나눠 쓸 수 있도록 했고, 회의실·강당 등 공간 대여도 가능하다.

다양한 서비스에 힘입어 ‘더강남’은 출시 3개월 만에 가입자 17만 명을 돌파했다. 2013년 서울시에서 출시한 모바일 앱 ‘내 손안에 서울’의 가입자가 10만 명 언저리에 머무는 것과 대조적이다. 

강남은 개발 밀도가 높다 보니 공간 부족이 심각하다. 대표적인 현상이 주차난인데. 
“그래서 앱을 통해 강남구의 주차장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공영·민영·거주자우선 주차장의 위치 정보만 알려준다. 앞으로 근처 주차장에 여유 공간이 얼마나 있는지까지 표시토록할 참이다. 주차장마다 차량 출입 대수를 체크할 수 있도록 블루투스(근거리 무선통신) 센서를 설치하면 된다. 일종의 사물인터넷이라고 볼 수 있다.”

강남에서 모임을 가지려고 해도 커뮤니티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올해 강남구 내 22개 동사무소를 모두 리모델링했다. 주민들에게 동사무소를 커뮤니티 공간 형태로 돌려드리기 위해서다. 강남구 내 동사무소를 들르면 단순히 민원처리 공간이 아니라 카페처럼 느낄 수 있도록 가꿨다. 이렇게 확보된 공간은 앱을 통해 빌려 쓸 수 있다. 또 동사무소 업무시간이 끝나도 커뮤니티 공간은 언제든 쓸 수 있도록 가림막을 설치했다.”

5개 국어 서비스도 곧 출시된다던데.
“영어·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아랍어 서비스를 마련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더강남’을 쓰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강남의 성형외과 병원을 찾는 관광객을 예로 들어보자.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병원 검색부터 상담, 예약까지 ‘더강남’ 앱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 또 인천공항에 내리면 어떤 교통편으로 강남에 올 수 있는지도 앱을 통해 알 수 있다.”

앱을 꾸준히 보완하고 있다고 들었다. 최종 형태는 뭔가?
“모바일 앱으로 재산세까지 납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재건축, 주거복지 차원도 고려해야”

이날 인터뷰는 강남구 대치1동 문화센터에서 이뤄졌다. 인터뷰에 앞서 정순균 구청장은 문화센터 한편에 마련된 커뮤니티 공간을 먼저 챙겼다. 의자를 손으로 만져본 구청장은  “어르신들이 앉기엔 딱딱하고 차갑다”면서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온열 의자처럼 바꿨으면 좋겠는데, 여의치 않으니 우선 방석이라도 가져다 두면 좋겠다”고 세심한 관심을 보였다. 다음 선거로 재신임받아야 하는 선출직 공무원으로선 ‘큰 업적 한 방’에 대한 유혹도 클 법하다. 

 
월간중앙
만국기가 내걸린 강남구 영동대로 일대 모습.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국제도시 면모를 강조한다.
 

성과주의의 유혹을 느끼지는 않나? 
“강남은 눈에 띄게 바뀌기 어렵다. 웬만한 곳에 다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제는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품격을 지향할 때다. 품격을 갖춰야 한걸음 더 나갈 수 있다. 한자로 ‘격(格)’은 ‘바로 잡는다’는 뜻을 가진다. 농사꾼이 제각기(各) 자라는 작물들을 나무 버팀대(木)에 묶는 모양에서 비롯한 말이다. 버팀대가 있어야 작물들이 그것에 기대 올곧게 줄기를 뻗어나간다. 강남에도 버팀대가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필환경 도시를 만들고, 도시 브랜드를 재정립하고, 모바일 앱을 만들어 흩어져 있던 도시자원들을 집적시켰다.”

강남에는 들끓는 욕망이 있다. 테헤란로를 2000년대 ‘벤처 붐’의 중심지로 만든 욕망이다. 이런 열기를 잘 살려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 같다.
“지금 역삼로 일대에 제2의 벤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 일대를 ‘강남구 창업가거리(스타트 트랙)’로 지정해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확대·발전시켜 나길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2020년에 역삼로에 820㎡(248평) 규모의 강남스타트업센터를 개관한다. 14개 팀 60명의 입주공간을 마련하게 된다. 이를 3년에 걸쳐 1980㎡(600평) 규모로 확대해서 35개의 창업기업, 160여명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또 2020년 상반기 판교와 테헤란로 중간에 위치한 자곡동에 823㎡(250여평) 규모의 로봇 벤처리빙랩도 만들 계획이다. 생활공간에서 실험활동을 수행하고, 사용자 의견을 수렴하면서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이미 중소벤처기업부 공모사업에 응모, 국비 18억원을 확보했다. 이렇게 테헤란로와 역삼로 주변을 창업의 메카로 부활시켜 ‘스타트업 하러 강남 간다’는 말이 다시 나오게끔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부동산 재개발·재건축 이슈도 여전히 뜨겁다.
“재건축사업의 핵심은 서울시 <2030 도시기본계획>에 포함된 35층 층수 제한이다. 강남구는 ‘층수 제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시·구협의체를 통해 이미 전달했다. 일률적인 35층 제한보다 강남의 지역 여건이나 특수성 등을 반영한 차별화된 대책이 절실하다. ‘평균 35층’으로 융통성을 주거나 좀 더 유연한 계획을 수립한다면 스카이라인이나 한강 조망권이 확보된 미래형 아파트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 강남의 재건축은 부동산 정책, 집값 안정 등 정부정책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토부와 서울시에서 더욱 까다롭게 검토한다. 이런 사정으로 재건축이 늦어지지만, 건축된 지 40년 된 아파트에 사는 주민의 주거 복지를 위해서라도 더는 강남 재건축을 막을 명분은 없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구청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민주당 사람을 구청장 시켜봤더니 생각보다 잘하는 구나’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그게 내가 떠나갈 때 듣길 바라는 유일한 말이다.”

월간중앙 문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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