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칼럼

Happy Life 주민 칼럼

순덕이의 사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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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
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칼럼니스트

우리는 순덕이를 대학 시절에 만났다. ‘깡촌’에서 갓 상경하여 기숙사 수세식 화장실의 물 내리는 걸 몰라 발로 눌러야 하는 레버를 쪼그리고 앉아서 마구 돌렸다고 해 박장대소를 금치 못하게 했던 순덕이다. 순수하고 대범하며 남을 도울 줄 아는 언니 같은 친구다. 하지만 가끔 좌충우돌, 대형 사고(?)도 쳤다. 같은 대학에서 한 남학생과 교제를 했다. 안타깝게도 어느 날 그 친구가 폐결핵 판명을 받았다. 남자 친구는 떠나라 했고, 양가 부모는 물론 주변에서 모두 말렸지만, 병든 그를 도와야 한다며 결혼을 했다. 결국 남편은 두 살 된 딸과 배 속에 아들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때 순덕 나이 스물아홉 살. 혼자서 전력을 다해 남매를 잘 키웠고, 성공한 남매는 호주와 미국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다. 퇴임 후 순덕이는 못다 한 여행과 배우고 싶었던 희랍어, 라틴어, 콥트어까지 공부하며 말년을 알차고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긴 고생을 끝내고 말년에 삶의 꽃을 피우는 듯했다.
2018년 11월, 순덕이는 정기검진에서 암 4기라는 청천벽력을 만난다. 암은 이미 세 군데로 전이되어 있었고, 6개월 시한부라 했다. 당장 우리는 순덕이를 위해 ‘매일 기도’에 들어갔으나, 정작 순덕이에게 힘을 불어넣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시한부도 한참 지났고 40차례나 되는 항암 치료를 혼자서 견디며, 서서히 예전의 순덕이로 일어서고 있다. 우리들은 그녀의 재기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올여름 그녀에게서 몇 장의 사진이 왔다. 사과가 예쁘게 달린 사과나무와 샛노란 호박꽃, 그리고 초록 잎 사이로 하얗게 고개를 든 감자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모두 순덕이의 작품이라 했다.
암 선고로 망연자실하고 있는 순덕이에게 미국의 사위가 국내 화원을 통해 사과나무를 선물했다.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판이니, 그 나무는 집 안 한구석에 밀어두었다. 어느 날 죽어가는 사과나무를 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가까스로 일어나 물 한 바가지를 주었다. 말라비틀어진 사과나무에 생명이 올랐다. 봄이 되자 움이 트고 새싹이 나더니 이어 예쁜 초록을 쏟아냈다. 생명의 환희였다. 힘이 났다. 그녀의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신문지에 싸여 방치되었던 사과나무를 화분에 심어 옥상으로 옮기고, 가끔씩 물바가지를 들고 옥상을 오르내렸다. 그렇게 생명의 교감이 시작되었다. 초록색 잎만으로도 행복했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계속 되었다고 했다. 다음 해 봄, 사과나무에 꽃망울이 맺혔다. 예쁘게 핀 꽃에 벌들이 찾아왔고, 꽃이 지고 사과가 맺혔다. 환희였다. 열매를 키우려면 얘도 영양분이 필요하겠다 싶어 우유 찌꺼기 같은 것들을 희석시켜 열심히 주었다. 식욕이 떨어져 다 먹지 못하고 버린 감자와 호박에서도 싹이 났다. 이것들에게도 조금씩 물을 주었다. 그러자 싱싱한 초록 잎과 아름다운 꽃으로 답했다. 창조주가 만든 생명의 신비에 온몸으로 감동하며 녹색 식물들과의 공생이 이어졌다. 6개월의 시한부도 스르르 지나갔다. 올여름의 긴 장마와 모진 태풍 속에서도 스무 알의 사과가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단단히 매달려 바알갛게 익어가고 있다고 했다. 우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사과의 ‘안부’를 묻고 있다. 까닭도 없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불안불안한 순덕이의 건강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게 다 실망하지 않고 일어서고자 하는 순덕이의 의지의 산물이다. 누군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순덕이의 사전에 절망은 없다. 오직 희망만 있다. 우리들은 순덕이로부터 그걸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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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순덕이가 보내준 사과나무, 호박꽃, 감자꽃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