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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느티나무(도곡1동 9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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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역사
- 도곡동·
역삼동 편
매봉산 정기 품은 도곡동
방아다리 역삼동

독구리산 아래 돌 많은 마을 도곡동

도곡동은 매봉산과 함께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역사, 마을 풍속 등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마을 뒤편에 매의 부리를 닮았다는 매봉산(매峰山)이 있는데, 산부리에 돌이 많이 박혀 있어 ‘독부리’라고 했다. 이 명칭은 ‘독구리’, ‘독골’, ‘도곡’으로 변화 과정을 거친다. 그러니 도곡동은 매봉산의 별칭인 ‘독구리산’ 아래 돌이 많은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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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 독구리 산제당(도곡동 산 34)
매봉산 중턱 도곡동 산 34에는 ‘독구리 산제당’으로 부르는 동제당(洞祭堂)이 현존한다. 500여 년 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도 이곳에서는 매봉조기회에서 매년 음력 10월 초순 날을 잡아 풍작에 감사하고 국운 상승, 액운 퇴치 등을 기원하며 산신령에게 산제를 지낸다. 지난 2002년 11월 마을 사람들이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독구리 산제당’은 60여 년 전 지금의 자리에서 약 100m 떨어진 지점으로 옮기자 그해 전염병과 흉년이 들었고, 산신령이 노하여 생긴 일이라고 여긴 마을 사람들이 즉시 원상 복구했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도곡동은 조선시대 경기 이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한양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머무는 곳이자 도자기를 굽던 도요지(陶窯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남부순환도로 변에는 73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가 살아 있어 든든한 자태를 뽐낸다. 논현로 209에 자리 잡은 이 나무는 1968년 7월 보호수로 지정됐다. 조선 중엽부터 말죽거리 역마을 사람들이 이 느티나무 앞에서 도당제(都堂祭)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느티나무 인근에는 조선시대 이 일대에 살았던 김의신(金義信)이라는 사람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효자비도 세워져 있어 감동을 준다.
마을의 뿌리 역할을 하는 느티나무는 주변 건물의 높이를 제한하는 한편 그 주변에 공간을 확보하고 울타리를 설치해 강남구에서 정성으로 보살핀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강남의 역사>(강남문화원), <매봉조기회 35년사> 등 참조) 한편 도곡1동 양재역 4번 출구를 나오면 ‘말죽거리’라는 석상을 만날 수 있다. 이는 과거 양재역이 말과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말죽거리(말죽을 쑤어 먹인 곳)는 역마을로 한강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며 말에게 말죽을 먹이던 곳이었다. (두산백과 참조)

말죽거리, 윗방아다리, 아랫방아다리 세 마을 합쳐 ‘역삼리’

역삼동(驛三洞)의 유래는 조선시대 역촌인 말죽거리, 상방하교(윗방아다리), 하방하교(아랫방아다리) 등 세 마을을 합쳐 ‘역삼리’라 한 데서 붙은 이름이다. (향토문화전자대전 참조)
역촌은 옛날 양재역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이 거주하던 마을로 이후 1914년 그 주변 마을인 양재동 말죽거리와 방아다리가 통합돼 ‘역삼리’가 됐다. 방아다리에 얽힌 유래는 역삼1동 주민센터 앞 ‘방아다리 유래비’에 상세히 적혀 있다. 유래비에는 “방아다리마을에는 놀이마당 잿마당 그리고 연자방아 및 몇백 년 된 느티나무, 뻐꾹산, 솔개골 등이 있었으나 도시개발로 소멸되었다”라고 새겨져 있다. 과거 자연 마을이었던 방하교리(方下橋里)는 방아다리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으로 윗방아다리와 아랫방아다리로 불렸고, 윗방아다리는 현재 테헤란로 북쪽 국기원 근처고, 아랫방아다리는 역삼초등학교 부근에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역삼동과 관련해 ‘역마을 묘 터 설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이야기는 역삼동에 한동안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던 이유에 얽힌 전설이다. 강남문화원에서 출간한 <강남의 역사>에는 조선시대 한 임금이 한강 건너에 묘 터를 잡아 부원군(조선시대 임금의 장인)의 장례를 치르고자 했을 때 역마을 사람들이 반대하자 마을 사람들을 50리 바깥으로 쫓아내 마을이 없어졌다가 이후 다시 마을이 들어서 사람들이 살게 됐다는 수난사가 적혀 있다.
이러한 사연을 간직한 역삼동에도 과거 노송들이 숲을 이룬 동제당이 있었는데 마을 이름을 붙여 ‘방아다리당집’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도시계획으로 변화가 있던 1983년까지 주민들이 동제를 지냈으나 개발의 뒤안길로 밀려 사라지게 됐다.
한편 역삼동은 청동기시대 주거지로도 유명하다. 이 주거지는 매봉산 구릉에 위치해 도곡동에 해당되지만, 지난 1966년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될 당시 역삼동이었기 때문에 ‘역삼동 청동기시대 주거지’로 이름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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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표지석(양재역 4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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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다리 유래비(역삼1동 주민센터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