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Happy Life 크리에이터

creator_01.jpg

‘잘’ 놀고 있네~

creator_02.jpg
허태균
(한국여가문화학회 회장,
고려대학교 교수)

대학에서 강의할 때, 특히 저학년 학생들에게 꼭 하는 진심 어린 조언이 있다. 가능하면 열심히 연애를 해보라는 것이다. 이왕이면 한 상대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사랑받는 연애를 경험해보라고… 그냥 쉽게 되지는 않을 테니 꼭 최선을 다해보라고 한다. 그것이 수업에서 배우는 지식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지혜를 키워준다고.

성공적인 연애를 위해서는 세 가지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한도 내에서 자신의 장점과 능력을 강조하고 멋있게 포장할 수 있는 자기제시(self-presentation) 능력, 기대에 못 미치는 상대의 마음과 진도(?)를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과 거시적 전략,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면서 대신 더 가치 있는 것을 얻어내는 협상(negotiation) 능력이 그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 능력만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업, 직장 생활, 영업 등 그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항상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고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인정받는 학위를 받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미래에는 더욱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우리의 먼 조상과 기성세대들도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애를 잘했고, 자녀도 낳아서 잘 키웠고, 훌륭한 문화를 형성했으며,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사회경제 발전을 이룩했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 그 어마어마한 교육비를 지출하며 70%가 넘는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현재의 젊은 세대가 더 지혜로워서 연애도 더 잘하고, 자녀도 더 잘 키우고, 더 많은 것을 이루며 더 멋진 인생을 살 것같이 보이지도 않는다.

젊은 학자들의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 사람의 성격과 동기에 맞는
최적의 여가 활동을 찾아주는
여가 큐레이션 모델이 개발됐고,
그것을 활용한 강남구의 ‘여가콕’이라는
서비스도 시작됐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정치면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하기도 싫을 정도다. 사회면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결혼과 출산율은 이미 곤두박질쳐서 세계 최하위인지 오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자녀를 방치하다 못해 학대했다는 뉴스와, 말도 안 되는 성범죄와 동영상에 관련된 뉴스들로 도배되어 있다. 그런 뉴스들의 주인공이 너무나도 멀쩡해 보이는 청년세대라는 사실에 경악할 때가 많다. 왜? 교육을 못 받아서? 공부를 적게 해서? 절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공부만 해서일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학교 공부 외에는 별로 들어본 것도, 배운 것도, 해본 것도 없는 그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많은 부모들은 수학과 영어를 잘하면 인성이 좋아질 거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하루에 8시간을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에서 나머지 8시간을 보내고, 매일 숙제에 찌들어서 친구들과 경쟁만 하라는 세상에 사는 학생들이 인성이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친구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며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며 관계를 발전시켜볼 기회가 적은 청년들이 사회성이 좋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망상에 가깝지 않을까. 스무 살까지 연애 한번 해보지 않은 이들이 사랑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람을 사귀고 몇 달 몇 년을 기다리느니, 클릭 몇 번이면 모든 성적 판타지가 채워지는 동영상을 찾으며 왜곡된 성 인식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creator_03.jpg

뭐 기성세대라고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취미가 술, 특기가 폭탄주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을 배회하는 것이 인생의 낙인 기성세대도 너무 많다. 이제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었다. 공부가 부족해서, 일을 적게 해서, 열심히 살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들이 아니다. 오히려 잘 놀아보지 못해서, 함께 놀아본 경험이 적어서, 그래서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아서 문제다. 그 측면에서는 기성세대나 청년세대나 똑같다.

약 20년 전에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들어온 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학자들이 모여서 고민했다. 우리 사회에 소위 선진국에 비해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가까운 미래에 가장 문제가 될 것이 무엇인지를. 돈, 음식, 자동차, TV, 에어컨, 뭐 이런 것들일까? 결론은 여가였다. 선진국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학자들 눈에 한국 사회가 선진국에 비해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노는 시간과 노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학회를 구성하고 연구를 했다. 처음에는 욕도 많이 먹었다. 한참 공부해야 할 학자들이 ‘노는 것’이나 연구하고 있다고. 한마디로 ‘놀고 있네~’라는 거다. 하지만 그 연구들을 통해 주 5일제 근무, 대체 휴일제 등을 도입하는 데 앞장섰고, 지금의 한국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 사람의 성격과 동기에 맞는 최적의 여가 활동을 찾아주는 여가 큐레이션 모델도 개발됐고, 그것을 활용한 강남구의 ‘여가콕’이라는 서비스도 시작됐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노는 게 쉽다고. 그냥 기회만 주면 잘 놀 수 있다고. 만약 그렇다면 길어진 수명과 늘어나는 여가,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선진국 사람들은 우리만큼 두려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떤가? 노는 시간이 주어지면 놀 준비는 되어 있을까? ‘잘 노는 법’을 찾고 준비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인 세상이 되었다. 결국은 언젠가 우리 모두 다 ‘놀고 있네~’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