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화 그리기 봄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모두가 염원하던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어느 토요일 정오. 비 오는 날의 창밖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역삼동의 화실에서 이날의 감성을 그대로 머금은 6인6색의 아크릴화 그리기가 이루어졌다
일상의 피로를 해소하고 힐링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운동을 통해 땀으로 배출하는 사람들도 있고 카페에 호젓이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 요리와 여행, 필사를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이들도 많다. 그림 그리기도 그 중 하나다. 성인들이 취미로 하는 미술에는 실력과 경험이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싶은 마음과 그리고 싶은 대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여섯 명의 참가자 또한 오로지 그림에 대한 마음만 품고 캔버스 앞에 앉았다. 취미로 수채화, 식물화 등을 종종 그렸던 박영순 씨를 제외하면 모두 학창시절 이후 처음으로 붓을 잡는다며 설렘과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아크릴화는 수채화나 유화와 달리 빨리 물감이 마르고 말끔히 덧바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어서 그림이 처음인 초보자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1~2시간만에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완성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것이 이채현 원장의 설명이다. 물감이 마르면 다른 색을 덧칠해도 번지거나 섞이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색을 과감하고 분명하게 칠하면 된다. 이 원장은 “마치 매니큐어처럼 두세 번은 덧발라야 색이 선명하게 나와요”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1950년대에 만들어져 미술용 물감 중 가장 역사가 짧지만 빠른 건조와 내구성으로 팝아트 화가 등 현대 아티스트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다.
먼저 모두 샘플 그림을 보고 무엇을 그릴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풍경화, 정물화, 추상화, 만화 캐릭터 등 다양한 그림들을 살펴보며 각자의 화폭에 담을 그림을 정했다. 그림 경험이 조금 있었던 박영순 씨는 가로등이 켜진 눈 내리는 밤 풍경을 골랐고, 어릴 때는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그림을 그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박은희 씨는 봄날에 어울리는 담장 아래로 베일처럼 떨어지는 덩굴꽃을 선택했다. 대학교 친구라는 조민진 씨와 김슬기 씨는 모두 재기발랄한 현대미술 같은 그림을 골라 취향도 통하는 ‘찐친’임을 보여줬다. 사귄 지 꼭 한 달 째 라며 데이트 삼아 신청했다는 이승언 씨와 김주승 씨의 선택은 스누피와 꽃다발이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취향이 드러나는 그림 샘플을 옆에 두고 캔버스를 마주하고 앉았다. 색칠하기에 앞서 밑그림을 그렸다. 미술 초보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전문가의 도움으로 참가자들은 캔버스와 형태의 비율을 고려해 연필로 빠르게 드로잉을 해나갔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채색할 차례다. 쟁반 같은 팔레트에 원하는 색의 물감을 짜고 채색의 준비를 마쳤다. 아크릴 물감이 우리가 흔히 아는 튜브형이 아니라 작은 사이즈의 음료수병 같은 것도 이색적이다. 아크릴물감은 수용성이기에 붓을 씻거나 물감을 묽게만들 때는 물을 사용해야 한다. 박은희 씨는 붓을 캔버스에 대기 전 어떻게 하면 꽃의 색깔과 형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할지 골똘히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눈과 손을 믿고 주홍색 꽃잎과 초록의 싱그러운 잎을 채색하기 시작했다. “예쁜 꽃다발 그림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예정”이라는 김주승 씨는 꽃의 아름다운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샘플 그림을 보고 또 봤다.
이승언 씨는 “배경인 하얀색은 어떤 붓으로 칠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며 붓 하나를 선택할 때도 신중을 기했다. 생크림 케이크를 고른 조민진 씨는 생크림의 두터운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하얀색 물감을 바르고 또 발랐다. 김슬기 씨의 그림 역시 형태보다 물감의 질감과 색이 돋보여야 해서 여러 물감을 다양하게 배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박영순 씨의 고민은 밤풍경에 눈송이를 그릴지 말지였다. 이미 검정색, 흰색, 회색, 남색 등으로 가로등이 켜진 밤 풍경을 근사하게 표현한 후였다. 간간이 도움을 구하는 속삭임과 붓질하는 소리외에는 기분 좋은 정적만이 내려앉은 화실 풍경이 평화롭다. 마침내 완성한 6점의 그림. 자신조차 몰랐던 내면의 예술성과 조용한 몰입의 결과 물에 모두가 만족스러워하며 같은 감상을 전했다. “어쩐지 몸과 마음이 개운해요. 왠지 자신감도 생겼고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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