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지 못해도 즐거운 뮤지컬이 될 수 있어요!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손창환 간사
강남구 광평로 지하철 수서역 인근의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시각과 청각에 모두 장애가 있는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문화·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곳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는 손창환 씨는 시청각장애인이다. 춤과 음악을 즐기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는 수어 뮤지컬을 만들기도 했다.
오늘도 손창환 씨는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했다. 근무시간 전에 시집이나 격언 등을 읽는데 그러면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는 느낌이고, 시청각장애인 간사로서 필요한 문해력을 키워갈 수 있다고 한다. 2022년 밀알복지재단 시청각장애인 직원 1호로 채용된 그는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점자 읽는 법, 수어 쓰는 법, 점자 정보 단말기 사용법 등을 가르치고 상담 활동 및 문화 프로그램 기획 등을 담당하고 있다.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는 제 첫 직장입니다. 전에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입사한 곳은 여기가 처음이에요. 그만큼 소중하고 매일 출근이 기다려져요. 시청각장애인들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보다 더 고립된 삶을 살아가기 쉽습니다. 외향적이고 새로운 걸 배우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저도 한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올해 나이 55세인 손창환 씨는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고 약하게 유지됐던 시력을 서른 살무렵 모두 잃었다. 그가 살던 광주에서는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이나 복지프로그램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청각장애인을 돕겠다고 나서는 곳은 없었다. 이런 현실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를 알게되어 상경, 도움을 받았고 동료 상담가로 활동하다 간사로 일하게 됐다.
시청각장애인은 촉수화로 소통한다. 보고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의 손바닥에 손등을 맞대고 하는 수어인 촉수화를 하는데 손창환 씨와 촉수화를 나눈 비장애인 통역사가 전해주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손의 감각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풀어내는 그는 밝고 풍부한 표정 또한 인상적이었다.
손창환 씨는 중학생 사춘기 때부터 뮤지컬, 연극에 흥미를 느끼고 춤과 음악을 좋아해서 소풍날이면 장기자랑 무대에 올라 끼를 발휘하곤 했다.
“시각을 잃기 전엔 뮤지컬 쪽으로 취업을 꿈꿀정도로 좋아했어요. 흥과 여러 감정들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시각을 잃기 전 즐겨봤던 뮤지컬을 응용해 ‘수어 뮤지컬’을 만들었어요. 성경의 한 부분을 뮤지컬로 만든 것인데 혼자서는 못했을 거예요. 배우 김소영 님을 비롯해 시청각장애인 모임인 ‘손끝세(손끝으로 보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할 수 있었어요. 진동과 촉수화로 음악을 느끼는 시청각장애인들이 음악을 경험하도록 촉수화 통역을 해준 동료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죠.”
수어로 이야기하며 유쾌한 춤과 몸짓을 추가해 만든 그의 수어 뮤지컬은 작년 크리스마스에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선보였고 따스한 호응을 받았다. 그는 ‘손끝세’ 친구들과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를 샘솟게 하는 뮤지컬을 더 만들어 갈 계획을 갖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뉴욕의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센터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고 호주에서 시청각장애인 국제모임에도 참가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열린 생각과 자세를 갖게 됐어요. 장애인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장애란 벽이 아니라 다름의 가능성을 넓히는 문임을 강조하는 손창환 씨의 얼굴이 희망으로 빛났다. 올해 대입을 준비해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꿈을 밝힌 손창환 씨. 그가 요즘 가슴에 품고 있는 글귀라며 환한 웃음으로 들려줬다. “여러분도 느껴보세요. 다르게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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