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지날수록 벗어나기 힘들어” 

▲ 아침부터 술 16일 오전 서울 강남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출근 시간이 되자 역사를 빠져나와 역사 외부 환풍구 시설 주변을 휴식 공간으로 바꾼 ‘서초 바람의 언덕’ 앞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 아침부터 술 16일 오전 서울 강남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출근 시간이 되자 역사를 빠져나와
역사 외부 환풍구 시설 주변을 휴식 공간으로 바꾼 ‘서초 바람의 언덕’ 앞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지하상가 한구석에 박스로 만들어 놓은 노숙인 거처. 종이 박스집 주인은 15일 오후 8시쯤 어디로 갔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지하상가 한구석에 박스로 만들어 놓은 노숙인 거처.
종이 박스집 주인은 15일 오후 8시쯤 어디로 갔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늘어나는 ‘강남역 노숙자’

“노숙하기 직전상황이란 없어
점점 구걸에 익숙해져버린 삶”
“아플 때 타이레놀만 먹고 버텨
물품 살 때 빼곤 말한 적 없어”

자립센터서 만난 前 노숙인들
저마다 사회적 고립 현실 토로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남지역자활센터 교육장에 길게는 17년, 짧게는 1달간 겪어온 노숙 생활을 접고 사회 복귀를 준비하고 있는 40대 남성 4명이 둘러앉았다. 이들은 예고 없이 찾아온 노숙 생활의 쓰라린 기억을 여전히 뇌리에 새기고 있었지만, 이제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새 삶을 준비한다는 기대감도 안고 있었다. 

이날 모인 ‘전직’ 노숙인들 중 맏형 최모(48) 씨는 노숙 생활을 떠났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며 10여 년을 보냈다. 그는 “노숙인 생활을 벗어났다가 어깨를 다치고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다시 노숙을 했다”며 “지금쯤 장성했을 아들이 하나 있는데 연락은 끊어졌다”고 말했다. 최 씨는 “노숙인들 사이에서 구걸을 ‘꼬지’라고 부른다”고 설명하면서 “그 생활이 익숙해질수록 노숙 생활을 그만두기 어려워진다”고 돌이켰다. 최 씨는 “강남역에서 네댓 시간 꼬지를 하면 건설현장 막일 하루 일당을 모을 수 있다”며 “그 돈으로 PC방에서 밤을 새우거나 찜질방에서 잤다”고 말했다. 

벽지 배달을 하다 허리를 다친 이모(46) 씨도 갑자기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이 씨는 “고시원 월세가 몇 달째 밀린 상황에서 일은 할 수 없어 앞이 캄캄했다”며 “짐도 챙기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도망쳤다”고 털어놨다. 비교적 젊은 나이라는 이유로 동사무소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이 씨는, 자신을 자활센터로 데려온 김광호 강남구청 거리노숙인순찰반 반장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저처럼 젊은데도 지원을 받을 수 있나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노원구, 잠원한강공원 등지를 옮겨 다니며 4명 중 가장 오랜 노숙인으로 살아온 막내 김모(42) 씨는 노숙 전 어떤 사회생활을 했는지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묵묵부답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시작된 막내 김 씨의 노숙 생활은 17년 동안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강남역 출신’은 아니지만 이곳 자활센터에서 재기를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김모(47) 씨는 동호대교 아래에서 움막을 짓고 5년을 살았다. 그는 “지하철 막차가 끊길 때부터 해가 뜰 때까지 새벽 동안만 바깥에 있었다”며 “대부분 시간을 ‘텐트’에서 지냈다”고 설명했다. 텐트 생활은 날씨가 추운 겨울에 특히 더 힘겨웠다. 김 씨는 “겨울에는 텐트를 3겹으로 치고 버텼다”며 옛일을 떠올렸다. 오랜 기간의 노숙 생활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고립감이었다. 그는 “편의점에서 물건 가격 물을 때 말곤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플 때도 편의점 타이레놀만 먹으면서 버텼다”고 기억할 만큼 고립된 시간을 보냈다.

문화일보 서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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