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개인전
《예술과 암호-고인돌의 그림들》



전 시 작 가 : 김혜련
전 시 일 정 : 2021년 04월 29일(목) ~ 06월 11일(금)
장 르 : 회화
전 시 장 소 : 슈페리어갤러리 제1전시관

  
1. 김혜련_예술과 암호1_종이에 먹, 나무판넬 에 배접_153x110cm_2020
2. 김혜련_예술과 암호5_종이에 먹, 나무판넬 에 배접_153x110cm_2020

김혜련 먹작업의 촉각적 현대성
<동쪽의 나무>, <완전한 그릇>, <황금눈물>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 역사현장에 대한 상처와 아픔에 공명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던 김혜련 작가는 한국 고대 유물에서 선에 대한 조형적 감수성을 발견하고 선사 및 고대 역사연구로 작품의 주제를 확장하였다. 1992년 베를린 유학시기의 , 라는 제목의 먹작업에서부터 ‘먹’은 조형의 발견을 바로 실험 할 수 있는 익숙한 재료로 늘 작가와 함께 해왔다. 《예술과 암호: 고인돌의 그림들》 전시는 유화의 색을 통해 상징적 작업을 이야기 하던 작가가 색이 없는 검은 먹 작업만으로 작품의 본질에 깊숙이 파고드는 현대성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과 암호-빗살무늬(2018)》를 시작으로 《예술과 암호-고구려의 기와문양(2019)》 《예술과 암호–고조선(2020)》에 이은 예술과 암호 시리즈의 결정체인 고인돌 암각화 먹작업을 선보인다. 작가가 재해석한 고인돌 암각화는 100호 크기의 골판지 화면에 쏟아낸 격렬한 감정의 흔적과 촉각적인 현존감으로, 역사를 통한 깊은 울림에 대면하게 한다. 유화작품 <일곱개의 별> 시리즈에서 캔버스 위에 안료를 바르고 나이프를 이용해 긋고 파내는 행위를 반복했던 작업은 이제 골판지 위에 즉흥적으로 나이프로 긋고 긁어내는 작업을 통해 여러 겹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내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유화의 실험적 붓질을 먹작업에 도입하여 드로잉의 패러다임을 바꾼 독특한 창작의 결과물을 이번 전시는 보여준다.
김혜련 작가의 다양한 기호들과 다층적 의미들이 산재한 먹작업은 단순한 표현영역의 확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 속 추상 기호를 통해 수 천 년 전 암각화 제작자의 생존과 풍요를 향한 염원을 담은 긴장감과 에너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김혜련 작가노트
예술과 암호: 고인돌의 그림들


지난 여름 원주 토지문화관 레지던시에서 그 동안 진행했던 유물 드로잉의 출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낮에는 집중이 잘 되어 진척이 있었다. 그리고 겨울에는 고인돌과 암각화 주제로 동아시아 고고학회에 작품 제작의 배경에 대해 발표를 하게 되었다. 경주는 그 자체가 문화재의 보고지만 경주를 중심으로 그 부근에 청동기와 신석기의 주요 암각화가 흩어져 있다. 경주 바로 아래 남쪽에는 울주의 천전리 암각화와 대곡리 반구대가 있는데 두 곳이 다 현재 국보이다.
중요성과 규모에 있어 이에 비교할 수는 없으나 경주 인근에는 흥미로운 암각화들이 많이 있다. 경주 내의 석장리 암각화와 안심리 고인돌, 그리고 경주 위의 포항에는 인비리의 고인돌 암각화가 있고, 포항을 지나더 위쪽의 영일에는 칠포리 암각화가 있다. 포항에서 이제 방향을 대구 쪽으로 가다보면 도중에 영천에서 보성리 암각화를 만날 수 있다. 대구를 지나 더 직진하다보면 고령에서 장기리 암각화라는 커다란 벽면을 또만나게 된다. 이제 다시 방향을 돌려 남쪽 바다를 향하다 보면 함안에 도착하여 도항리의 고인돌들을 만날수 있는데 거기에는 현대 추상화 같은 간결하고 멋진 형상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남해 바다를 보고 햇살을 즐기고 여수의 고인돌들을 관찰하다가 다시 파주로 돌아오기 위해 방향을 북쪽으로 향하다 보면 조금 후에 남원에서 대곡리 암각화를 만나게 된다.

암각화들은 커다란 석벽에 병풍처럼 펼쳐지는 그림들이 더 유명하지만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거석의 한구석에 숨겨지듯 그려진 경우도 많았다. 그 커다란 돌들은 그 당시 최고 지배자들의 무덤이자 제단이자 벽화의 장소였고, 시간을 넘나들며 별들과 대화하고 싶어했던 선사인의 세계관이 암호처럼 새겨진 책장이기도 하다. 거기, 아주 오래된, 큰 돌 위에서 나는 당대의 가장 지성적이고 가장 예민했던 사람들의 최고 걸작을 감상한다. 우리 문화의 원형이 무엇인지, 내 예술의 기원이 무엇인지, 이 많은 큰 돌들을 그 시절 어떻게 운반했는지, 유독 한반도에만 30,000 여기나 되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인돌의 왕국이 왜 이 땅에 있었는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