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벽 허무는 팝 아티스트 정도운

 

우이~신설 경전철 첫 전시자로 선정 장애인 위한 ‘소리 보는 무대’ 꾸며 자폐 장애 뛰어넘은 예술 활동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선 정도운 작가. 힙합을 좋아하는 정 작가는 ‘살아 있는 네이버 지식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탁월한 정보 수집력과 분류하고 재조합하는 능력을 발휘해 작품에 엄청난 정보를 담는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소리를 볼 수 있을까?

지난 6월23일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린 ‘페스티벌 나다 2017’(Festival NADA 2017)의 공연은 그 답을 구할 수 있는 자리였다. 청각장애인과 함께하는 공연인 만큼 가사를 볼 수 있게 하는 스마트글라스와 춤추는 수화, 진동 스피커까지 준비한 무대였다. “룩, 룩, 룩셈부르크… 전쟁을 많이 하는 아메리카… 언젠가 하나가 될 코리아….” 노래가 시작되자 객석의 시선은 무대 옆에 비치는 영상으로 모였다.

독특한 글씨체와 가사에 나오는 국가들의 국기, 아이콘은 노래와 함께 춤을 추듯 움직였다. 강렬한 비트와 독특한 가사로 이뤄진 크라잉넛의 ‘룩셈부르크’는 팝 아티스트 정도운(23) 작가와 미디어 아티스트 송주형 작가의 협업으로 소리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입증해냈다.

“크라잉넛이 다음 공연 때도 사용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어요.” 정 작가와 송 작가의 협업을 기획한 김지수 문화예술기획자는 정 작가의 힘을 “꼼꼼한 검색을 통해 모은 정보를 분류하고 재조합하는 능력”에서 찾았다. 정 작가의 멘토인 문해주 설치작가는 “놀라울 정도로 방대한 정보와 기억력 그리고 다양한 언어들까지…. 살아 있는 네이버 지식인…”이라는 말로 작가 정도운을 설명한다.

정 작가의 작품은 엄청난 정보에서 시작한다. 뮤지션을 그린 그림에 종종 나타나는 노래 가사와 앨범 발표일, 가족관계 등의 정보를 빼곡하게 적어 내놓는다. 결혼하지 않은 연예인들을 모아 한 화폭에 담은 ‘장가를 못 간 연예인’, ‘아이 아빠 연예인’을 작품으로 내놓고, 한 아이 아빠, 두 아이 아빠, 세 아이 아빠 연작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엄청난 정보력이 바탕이 됐다.

자폐 장애를 앓고 있는 정 작가는 2016년 국내에서 유일한 장애인 예술가들의 창작지원 시설인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선정됐다. 창작 공간을 지원받으면서 작품 활동도 활발해졌다. 개인전 <정도운이 만난 사람 만날 사람>, 잠실창작스튜디오 기획전 <기항지 RIP(Rest In Peace)>, 문해주씨와의 기획전시 <정도운×문해주, 멘토와 콜라보레이션>전 등이 2016년에 이뤄낸 성과다.

‘페스티벌 나다 2017’의 독고정은 총감독은 “장애는 감각의 부재가 아니라 감각의 차이다”라고 말한다. 정 작가 역시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교육제도로 한때 그림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유년 시절부터 보여온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미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김지수씨는 2013년 강남장애인복지관 작가 양성 프로그램에서 만난 정도운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권해야 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싶은 그림’보다 ‘그려야 할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학교교육에서 정도운의 감각은 장애였을지 모른다. 학교를 벗어나면서 정도운의 감각은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노래를 들으며 놀 수 있도록 한 정 작가의 재능과 감각은 오는 8월이면 서울 시민에게도 선물처럼 다가올 듯하다. 이달 29일 개통 예정인 우이~신설 경전철 객차 내부 러닝갤러리(가칭)에 정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서울시는 객차 내부와 플랫폼, 각 역사의 공간을 공연과 전시 등 문화 정보와 예술 작품으로 채울 계획이다. 정 작가의 작품은 우이~신설 경전철 예술 작품 1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운 것을 그리는 게 그림이다. 정 작가의 그림에는 우리 모두가 만나고 싶은 그리움이 담겨 있다.”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정 작가 작품을 첫 전시 작품으로 선정한 이유다.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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