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장애 예술의 꿈이 영근다


장애인 예술 특화 ‘강남장애인복지관’
“자화상들이에요. 똑같은 그림이 정말 하나도 없죠. 일반적인 미술학원에서 사람을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그림들이 나와요. 장애인 예술가들에게는 그들만의 눈으로 본 세계가 있어요. 여기 이 그림 속 사람에게는 머리카락이 없어요. 얼굴 형태에 비해 눈, 코, 입이 정말 작은 그림도 있고요. 장애인을 자녀로 둔 어머니들께 말씀드려요. 이건 부족한 그림이 아니라고. 이 자체로 완전한, 특별한 그림이라고요.”
서울 강남구 강남장애인복지관에서 전시 기획과 장애 예술인 육성을 담당하는 김소연 씨는 휠체어 통로에 전시된 그림들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국에서 유일한 장애인 예술 특화 복지관인 강남장애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대다수 장애인복지관이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예술을 장애 재활과 치료 수단으로 활용한다. 반면 2009년 3월 문화예술 특화 복지관으로 개관한 강남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이 더 활발히 문화예술을 누리고 생산하는 데 방점을 둔다.

장애 예술인과 대중의 소통 기회 마련
예술을 직업으로 삼은 장애인이 무수히 이곳을 거쳐갔다. 김 씨는 “미술의 경우 현재 복지관 프로그램에 속한 장애인 전업 작가가 약 열 명이다. 복지관 설립 이후 이제껏 거쳐간 장애인 작가를 모두 더하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강남장애인복지관은 ‘5단계에 따른 장애 예술인 발굴 육성 프로젝트’를 개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일대일 예술 멘토링(지도) 강좌가 포함돼 있다. 현직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멘토(지도자)와 장애인이 만나 예술적 교감을 나누고 다양한 경험을 확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완성한 결과물은 전시, 공연으로 이어져 장애 예술인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 외에 평생교육 차원의 공연예술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시각예술 분야로는 성인 현대미술, 아동 미술 놀이터, 미술관 여행 등 다양한 예술적 욕구를 해소하고 수준별 표현 기법을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일대일 멘토링을 받고 있는 진리(27) 작가의 작업 현장을 찾았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진리 작가는 도예 작가로 활동하는 비장애인 채인화(33) 작가와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진리 작가는 원래 회화 작업을 주로 했지만 채 작가를 만난 후 도예와 회화를 접목시킨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두 사람의 작업장에서는 가수 아이유의 노래 ‘가을 아침’이 반복 재생 중이었다. 진리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늘 같은 노래를 듣는다. 두 사람은 2020년 12월 처음 만났다. 의사소통은 긴 문장이 아닌 짧은 단어로 이뤄진다. 두 사람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채 작가는 “진리 작가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말로 이야기한다. 진리 작가의 답변은 순수하고 정말 꾸밈이 없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모습도 보기 좋다”고 답했다.

장애-비장애 예술인의 화목한 작업
도자기를 들고 색칠하고 있는 진리 작가 곁에 앉은 채 작가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붓을) 살살 놓고. 여기다가 우리 하트 풍선을 색칠해봐요. 무슨 색으로?”
“파란색.”
“진리 님, (물감) 뭉친 거 퍼뜨려주세요.”
“잘한다.”
“네 맞아요. 살살 꼼꼼하게. 좀 말렸다가 마지막에 마무리해볼게요, 진리 님.”
진리 작가는 스스로 한 작업을 보며 “잘한다”고 말하는 등 자신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채 작가가 생각하는 진리 작가의 장점은 뭘까?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하다. 어떤 대상을 보든 진리 작가만의 해석이 있다. 단순화할 부분은 단순하게, 특징적인 부분만 살려서 본인의 이미지로 구성한다. 그런 능력은 누가 가르쳐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내용 면에서 진리 작가 고유의 것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기술적인 부분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진리 작가가 그림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어머니가 늘 옆에서 지켜보곤 했다. 하루는 진리 작가가 새를 그리고는 부리를 초록색으로 칠했다. 다른 색이 더 어울려 보였지만 그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어머니는 그대로 내버려뒀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보니 초록 부리가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진리 작가는 평소 색깔을 거침없이 고르는 편이다. 진리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주목하는 건 고양이, 오리, 나무, 무지개, 꽃 등이다. 첫 작품은 고양이였다.
채 작가는 진리 작가의 작업을 보며 “그리는 속도가 빠르지만 빠른 속도 때문에 수정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부분에서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채 작가는 이런 진리 작가의 특성을 고려해 “천천히” “꼼꼼히”라는 말을 종종 했다. 진리 작가도 채 작가의 말에 따라 붓을 쥔 손의 움직임과 속도를 조절했다.

“경험과 일상에서 영감 받아 그려”
진리 작가는 2019년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 갤러리), 성남시청, 성남시한마음복지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리앤리 갤러리에도 작품을 전시했다. 미국 관람객들은 맑고 순수한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는 호평을 남겼다.
동심을 담은 그림은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따뜻한 색감으로 그린 동물과 무지개, 하트는 캐릭터 상품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면서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진리 작가 언니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경험과 일상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린다. 일대일로 (채) 작가와 같은 공간에서 작품에 대해 연구하고 함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고민의 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진리 작가는 최근 집에서 아이패드로 그림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회화에서 도자기로, 또 다른 매체로 능력을 발전시키고 있다.
진리 작가뿐만 아니다. 강남장애인복지관은 다양한 장애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아동미술실, 상상플러스실, 입주작가창작실 등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지원 성과로 시각예술의 기획 전시 사업을 들 수 있다. 2009년부터 매년 10회씩 총 100회 이상 전시를 했다.

글·사진 박유리 기자  

장애 예술인 지원 확대로 창작 여건 개선
‘장애 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장애예술인지원법)이 2020년 12월 10일부터 시행되면서 ‘창작자’로서 장애 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또한 장애 예술인의 창작 지원 이외에 기반시설 확충, 장애인 고용 지원 등에 대한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장애 예술인 지원 정책 영역을 확대하는 종합 지원 체계를 갖추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장애예술인지원법 시행을 계기로 장애 예술인 지원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2021년 장애인 예술 지원 예산을 2020년 대비 58% 증가한 247억 원을 확보했다. 2021년에도 장애 예술인·단체, 장애인 공연예술단 활동 지원 등 장애 예술인의 직간접 창작지원사업(125억 원) 이외에 시각장애인 연주자 양성 등 장애 예술인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애인 예술인력 양성 사업(15억 원)을 추진한다.
또한 장애 예술인의 창작·전시·공연 등 문화예술 활동 현황 및 여건, 취업 상태 및 소득 현황, 장애 예술인 단체 현황 등의 내용을 포함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장애 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장애예술인지원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장애 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위원회 구성, 전담 기관 지정 등 장애 예술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중장기 계획을 통해 종합 장애 예술인 지원 정책을 추진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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