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라는 걸 왜 해요?"

예전에 학교 친구들과 단체로 호수공원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봉사, 그냥 남을 돕는다는 자체에서 기쁨을 얻는, 좋은 일.

다른 친구들은 학교에서 하라고 하니까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한다고 대답했는데, 난 정말이지 그렇게 대답하는 것은

내키질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봉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던 中.

마침 어느 친구의 소개로 신설된 역삼 노인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곧장 그곳으로 전활 걸어 예약을 했고, 오늘이 그 첫날이었다.

그리고, 평생 내 기억에 남을만한 10월 11일이었다.


친구와 함께 찾은, 골목 한구석에 자리잡은 복지센터 건물은 입구부터 무척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 노인분들만 계신 곳이라 다소 허름할 줄 알았는데,

안에 들어가니 친절하신 담당 선생님이 나오셔서 우리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신 2층으로 안내 해 주셨다.

"곧 점심시간이니까, 어르신들 식사 하시는 것 좀 도와드리고 말벗이 되어드리면 되는 거에요."



 2층에는 식당, 사무실을 빼고 방이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았다.

아늑한 방에는 할머님들 세 분이 각자의 침대에 누워 계셨다.

"안녕하세요!" 일부러 더 밝게, 큰 소리로 인사를 드렸는데 당황스럽게도 살짝 돌아보시는 것 외엔 다른 반응을

보여 주시지 않는 할머님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할머님들이 모두 아흔 살을 넘기신 분들이라 거동이 힘드시기 때문이었따.

특히 가장 체구가 작고 어린아이처럼 베개를 끌어안고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은 무려 103세라고 하셨는데, 이 할머

님께서는 많이 외로우셨던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게 무척 많이 의지하셨다.



 우선 담당 선생님께서 부탁하신 대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침대에서 일으켜 휠체어에 앉으시도록 도와드렸다.

혹여나 불편하실까 노심초사하면서 휠체어를 밀어 식당까지 옮겨드리자, 담당 선생님이 이번엔 그분들의 물통을 주

시며 "ㅇㅇ할머니는 미지근한 물로, ㅇㅇ 할아버지는 찹찹한 물로" 하시면서 물을 떠오라고 까다로운 지령을 내리셨
다.

 그렇게 물도 떠다 드리고, 식판을 어르신들 앞에 놓아 세팅을 해 드리고 나자 그분들은 식사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그 중 몇 분은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연세가 너무 많이 드셔서 스스로 수저를 드는 데 어려움이 있으셨다.

그래서 나는 한 할머니께 죽을 떠먹여 드려야 했고, 매 숟갈을 입에 넣으실 때마다 할머니는 다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 분은 목에 이상이 있으셔서 죽을 삼키는 일조차 무척 어려워하신다고 나중에 선생님이 귀띔해 주셨다. 



 어르신들의 식사가 끝나자 그제서야 그곳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식사를 하실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부탁하셨다. 

 "필요한 일 있으면 우리 부르고, 아니면 방에 들어가서 어르신들 말동무 역할 좀 해주겠니?"

그래서 아까 언급한 103세, 고령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가 다 빠져 버리셔서 틀니를 끼시고, 자그마한 체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모습은 내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뭐랄까, 난 아직 겪어보지 못한 세월을 전부 지나 그런 모습이 되신 것이라 생각하니 어르신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왔
다. 

그 할머니는 비록 건강은 좋지 못하시지만, 복지센터에서 '악동'으로 불리는, 가장 말씀이 많으시고 봉사자들의 손이

많이 가는 분이라셨는데, 역시 30분 간 쉬지 않고 내게 말씀을 들려주셨다. 

 "몇 살이니?"

 "열 다섯 살이에요."

 "국민학교 댕기나?"

 "아뇨, 중학교요."

 "겅부(공부)를 열심히 해야 혀, 안 그럼 나이 먹어서 사람 사는 게 못 돼. 그 때는, 공부가 제일 중요해. 공부해서 남 주
니? 아냐, 다 자기가 갖는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 헌다구."

 "예......"

 "우리 때는 기집애들은 핵교를 못 다녔어, 응? 복받은 거여, 지금은. 여자들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그래야 뭘 좀 알
고 사람같이 살지."

 이야기 하시다 말고 내 손을 꼭 붙들고는 꼬마아이같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시는 할머니.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난 너만 믿는다. 열심히 공부혀. 알았제?"

이렇게 말씀하시는 할머니는 날 진짜 손녀처럼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외할머니인데, 외할머니가 떠올라서 날 손녀처럼 대해주시는 이 할머니께

더욱 잘해드리고 싶었다. 

나도 뼈가 앙상하고 차가운 할머님의 손을 꼬옥 잡아드렸고, 할머니는 그 상태로 쌔근쌔근 잠이 드셨다.


겨우 한 번 하고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소 건방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오늘 봉사의 의미를 찾은 것 같다. 

말로 표현하면 이 감상이 사라질 것 같아서 도저히 형언할 수는 없는 느낌.

그렇지만 평생 가슴 속에 담아가고 싶은 따스한 느낌이다. 

타인을 도움으로써 내가 이렇게 더 큰 배움을 얻는 것이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고, 남에게 헌신하는 이유
가 아닐까.

 
- 내 손을 꼭 잡으시는 할머니

 지난 10월 11일 본 센터를 찾아 요양센터 어르신들의 식사수발을 돕고

말벗이 되어준 여 중학생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우리 어르신들께 따뜻한 마음으로 친구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