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시각장애 밴드의 첫 단독 콘서트
조선일보 2009년 12월 4일자
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5인 멤버의 '4번출구' 자작곡 등 선보여
"악보는 볼 수 없지만 느낌은 얼마든지 살려"
"남들은 빠르게 치는 부분에선 기타 코드를 잡는 손을 내려다보면서 쳐야 한다고 하더라. 우습지?"
2일 오후 6시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 주택가. 식당 건물 지하에 있는 음악연습실 '쟁이 스튜디오'에서 록밴드 '4번출구'의 기타리스트 김남동(34)씨가 말했다. 그는 고개 한 번 숙이지 않고 정면을 향해 고개를 꼿꼿하게 든 채 숨 가쁘게 빠른 속주(速奏) 실력을 과시했다. 베이시스트 고재혁(32)씨가 연주하며 대답했다. "남들은 그렇게 치겠지. 우리야 안 보고 치지만 말이야."
듣고 있던 보컬 한찬수(49)씨가 웃었다. "너희들이야 앞이 안 보이니까 안 보고 치는 거지. 앞이 보였으면 당연히 남들처럼 쳤을 거야.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연습이나 하자."
4번출구는 2005년 결성된 록밴드다. 멤버 5명 모두가 1급 시각장애인이다. 이들은 5일 오후 5시 서울 한강로 서울맹학교 강당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연다. 이를 위해 지난달부터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연습하고 있다. 콘서트 이름은 'Story of 4번출구(4번출구 이야기)'. 리더 겸 보컬인 한씨가 "우리의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4번출구 멤버들은 2005년 서울 봉천동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처음 만났다. 각자 악기를 배우러 왔다가 마음이 맞아 밴드를 만들었다. 베이시스트 고씨는 "요즘은 시각 장애인 밴드가 몇 생겼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뿐이었다"고 했다.
밴드를 만들고도 한동안은 복지관에서 합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2006년 리더인 한씨가 "우리끼리만 하지 말고 외부에서도 연주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해 3월 이들은 밴드 이름을 정했다. '4번'의 4는 '죽을 사(死)'자와 음이 똑같다. 한씨는 "죽음처럼 고통스러운 장애로부터 벗어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후 그들은 총 40여회에 걸쳐 합동공연 무대에 섰다. 기타리스트 김씨가 "불러주면 어디든 갔다"고 했다. 서울시 초청으로 서울 광장, 청계천 광장 무대에도 섰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공연했다. 이들이 최고로 꼽는 공연은 지난해 서울시내 모 여고에서 한 공연이다. 키보디스트 윤형진(27)씨는 "공연 내내 여고생들이 환호성을 질러 기분이 괜찮았다"며 웃었다.
멤버 중에는 선천성 장애인도 있고, 살다가 실명한 이도 있다. 리더인 한씨는 지난 2003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그전까진 대기업에 18년 동안 근무하며 취미로 음악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기타리스트 김씨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악보는 못 봐도 음악의 느낌은 얼마든지 잘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생계다. 멤버들 가운데 안정된 직장이 있는 사람은 드러머 홍득길(28·점자도서관 직원)씨뿐이다. 베이시스트 고씨는 경영학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시력을 완전히 잃은 뒤로는 서울 종로의 한 복지시설에서 안마사로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리더인 한씨는 부인이 미용실을 운영하고, 키보디스트 윤씨와 기타리스트 김씨는 안마사 수업을 듣고 있다. 초창기 멤버 중 2명은 생계가 막막해 밴드를 관뒀다.
이번 콘서트에서 이들은 자작곡 '내 손을 잡아'를 공개한다. 리더 한씨는 "첫 단독공연이라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이들은 지금껏 무료로 공연해왔다. 실력을 키우고 경험을 쌓은 뒤 언젠가는 적은 돈이라도 보수를 받고 연주하는 '프로 록밴드'가 되는 게 이들의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