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을 향해 걸어가는데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때문...도 있겠지만 솔직히 시작 전부터 너무 설레서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속으로는 '아, 내일 출근할 때 자켓 무조건 챙겨야겠네'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돌리고 있었지만요 ㅋㅋㅋ)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이 지휘자님과 강남심포니를 정말 좋아합니다.

매일 아침 좋아하는 컵에 따라 마시는 '순수한 물 한 잔' 같은 오케스트라랄까요.

어떤 자극적인 감미료가 없기에 오히려 함께하는 음식의 풍미를 제대로 살려주는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어제 무대도 그 깨끗한 바탕 위에 연주라는 양념을 아주 근사하게 얹어버렸더라고요.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봤는데.. 어? 좀 생경했습니다.

1바이올린 옆에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모여있고, 오른쪽 전면에 2바이올린이 와 있었습니다.

덕분에 평소엔 못 보던 2바이올린 선생님들의 왼쪽 얼굴을 직관하고, 첼로도 새로운 각도에서 감상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1바와 2바가 양쪽에서 소리를 주고받는 게 평소와는 또 다르게 들려서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연주까지 1바이올린에 계시던 선생님이 2바이올린 부수석으로 오셔서 오른쪽 중심을 딱 잡아주시는 걸 보고 속으로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평소보다 앞으로 전진해서 앉은 덕분에 지휘자님의 옆태와 입모양, 단원들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시는 미소까지 4K로 직관 완료했습니다! 😊

1.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

시작하자마자 현, 관, 타악기가 뚜띠로 밀고 들어오는데 시원하게 귀가 세척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데이비드 이 지휘자님의 칼 같은 밸런싱을 보는데, 문득 옛날 독일 로텐부르크 여행 때 성안쪽 길을 걸으며
'예전엔 이 길로 마차들이 막 활기차게 달렸겠지?'
상상했던 그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중세 거리의 활기찬 분위기가 음악 속에서 확 살아나는 느낌이 들면서,

아!  오늘 첫 곡부터 제대로 걸렸구나 싶었습니다. 
ㅋㅋ

2.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 (첼로 심준호)

오늘의 하이라이트.

이건 그냥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사실 이 곡을 처음 음원으로 접했을 땐 난해하고 생경해서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지만 어제 무대에서의 실연은 놀라움을 넘어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첼로 혼자 무대를 지배하는 그 악명 높은 카덴짜 파트...

지휘자도 없이 첼리스트 혼자 그 복잡하고 기괴한 음표들을 몽땅 외워서 악기와 한 몸이 되어 연주하는데 소름이 돋았습니다.

도대체 저 긴 난곡을 어떻게 다 외우셨는지 신기하고 얼마나 노력해야 연주가 가능할지 상상도 안 되더라고요.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첼로가 한 음을 짧게 툭 던지고, 길게 활을 긋고, 다시 한 음을 짧게 던지고...

그게 반복되는데 저는 순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뭔가 계속 생각하고, 계속 질문을 던지는 사람 같은 느낌.

참 이상하죠.
음악을 들으면서 조각상이 떠오르다니요.ㅋㅋ

그러다 다시 오케스트라가 들어오면 또 분위기가 확 바뀌고...

"객석에 있는 모두의 가슴을 터지게 만들겠다"고 작정한 소리를 저는 정면으로 맞아버렸습니다.

브라보!!!! 👏👏👏

제 부족한 어휘력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무엇보다 강심 단원들과 지휘자님, 그리고 심준호 첼리스트가 이 복잡한 음악을 서로 정확하게 주고받으며 끝까지 끌고 가는 모습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어렵다는 생각조차 잊게 만들 만큼 몰입해서 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1부 앵콜곡,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 중 '사라방드(Sarabande)'.

방금 전까지 쇼스타코비치로 객석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었던 무대 위로 묵직하고 서늘한 정적이 내려앉았습니다. 
첼로 단 한 대의 깊은 울림이 콘서트홀 공기를 단숨에 정돈하는데, 그 담백하고 깊은 묵직함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몰입했습니다. 
1부를 아주 인상적으로 마무리해준 앵콜이었습니다.👏👏👏

3. 베토벤: 교향곡 7번

쌀쌀한 날씨 덕분인지 베토벤이 뼈마디에 쏙쏙 박혔습니다.

1악장 빌드업과 선율의 추진력이 장난 아니었는데, 지휘자님이 포디움 위에서 발이 안 닿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에너지 넘치게 몸을 던지셨습니다.​

점프하실 땐 진짜 합창석까지 날아갈 기세였습니다!

역시 음악도 폼과 기세입니다!! 👏👏👏

가장 기대했던 2악장.

영화 《노잉》에서 들었던 그 음악을 실연으로 들으니 한 100배는 더 좋았습니다.​

절제된 템포 속에 소리의 층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데, 서늘하면서도 묘하게 숭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슬픔에 과하게 젖어들기보다 오히려 담담하게 풀어나가서 마음에 더 깊은 여운이 남아서...
2악장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3악장에서 귀가 단숨에 열리더니,

4악장이 폭발할 때는 한 권의 소설을 끝까지 달려가 마지막 장을 덮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음악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내는 듯했습니다.

또 하나,
이번 연주회에서 단연 인상적이었던 건 지휘자님의 독보적인 아우라였습니다.

어제따라 유난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새 콘서트 수트와 구두를 장만하신 것처럼 무대 위에서 빛이 났습니다.
(속으로 '어? 오늘 수트와 구두 새로 맞추셨나?' 싶었을 정도였어요! 🤭)
하지만 진짜 빛났던 건 옷보다도 그분의 에너지와 아우라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단순히 템포를 맞추는 걸 넘어 섬세한 큐부터 폭발적인 클라이맥스까지 온몸을 던져 소리를 끌어내시는데 저절로 시선이 고정됐습니다.

특히 베토벤까지 모든 연주가 끝나고, 수고한 단원들을 파트별로 일일이 세워 박수받게 하실 때 지으시던 그 뿌듯하고 따뜻한 미소!
오케스트라를 향한 깊은 애정과 신뢰가 가득 느껴져 보는 관객 마음까지 참 따뜻해졌습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얼마나 가까이 호흡하고 있는지 눈으로, 귀로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어제 연주는,

밝은데 가볍지 않고
웅장한데 과장 없고
슬픈데 질척거리지 않고
격정적인데 천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정말 좋았습니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오늘도 강심 공연 보러 오길 잘했다.'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정기연주회가 앞으로 두 번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 벌써 서운해집니다.

PS. 아주 살짝 아쉬웠던 '옥의 티' (feat. 관객 매너)

연주 자체는 정말 좋았지만, 환절기라 그런지 요란한 기침 소리와 핸드폰 떨어뜨리는 소리가 번갈아 들려 조금 아쉬웠습니다.

특히 압권은 **밤 9시 정각을 알리는 알람 소리...** (9시에 약속이라도? 😅)

무대 위에서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아주 미세한 소리와 호흡까지 신경 쓰며 한순간을 만들어가는데, 객석에서도 조금만 더 신경 써준다면 그 몰입이 훨씬 오래 이어질 것 같습니다.

다음 연주회에서는 관객들의 매너까지 100점이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