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무더위에 찌들어 겨우 예당 도착했지만, 객석 문 닫히고 첫 음 울리자마자 현실 감각 싹 날아가고 아라비아 대륙으로 자동 워프했습니다!


사실 저는 생상스 5번 '이집트' 들을 때마다 2악장 후반부터 졸음이 오는 고비가 많았는데, 어제 박종해님의 연주는....
와아~~~
건반에 착착 붙는 이 묵직한 타건감에 음 하나하나가 3D로 생생하게 튀어나오는데, 속으로 "아니 건반이랑 싸워서 이기는 이 몰입감 대체 무슨 일이지?!" 하고 감탄할 틈도 없이 어느 순간 음악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전설은 앵콜이었습니다!

라벨 ‘토카타’로 객석을 단숨에 사로잡으신 뒤, 두 번째 앵콜에서는 갑자기 첼로 수석님의 첼로를 받아 들고 진지하게 튜닝을 시도하셨습니다.

너무나 진지한 표정에 순간 기대했습니다.

“혹시 오늘 새로운 첼리스트의 탄생인가?”

하지만 몇 번 튜닝하시다가 "아 이건 안 되겠다" 하고 슬그머니 피아노 앞에 다시 앉으셨는데, 무대도 객석도 완전 빵 터졌습니다. 🤣🤣

그러고 생상스 '백조' 연주할 때 첼로 수석님이 먼저 슬그머니 퇴장하시니까, 연주 끝난 박종해님이 "어...? 내 짝꿍 어디 갔지...?"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무슨 예능 보는줄 알았습니다.
누가 기획하신 아이디어인지 아주 좋았어요!


그리고 2부 세헤라자데.
솔직히 저한테 <세헤라자데> 하면 김연아 선수 피겨 스케이팅 프로그램이 절대 존엄이었거든요.
근데 어제부로 제 마음속 원톱 지분은 데이비드 이 지휘자님과 강남심포니가 싹 쓸어갔습니다!!!

첫 시작부터 관객들을 매직카펫에 태워서 아라비아 밤하늘로 영혼을 쏘아 올려버림...

태선이 객원 악장님 바이올린 솔로에 심장 녹아내리고, 팅커벨이 귀에 금가루 쏟아붓는 하프 소리에 숨 쉬는 법까지 잊어버렸습니다.

감미롭던 기분도 잠시, 4악장 넘어가면서 거친 파도 한가운데 던져진 느낌!

얼마전 지휘자님 인스타에서 "4악장에서 고함 친다 vs 안 친다" 투표 올리신 거 보고 고함 텐션 엄청 기대했는데, 고함이 문제가 아니라 지휘자님 온몸을 던지는 디렉션이 진짜 소름이었습니다!
(솔직히 지휘자님의 고함도 엄청 궁금했습니다)

어찌나 격렬하신지 "어어? 저러다 포디움 밑으로 떨어지시는 거 아니야?!" 하며 손에 땀을 쥐고 봤습니다.
안그래도 키도 훤칠하고 지휘에 몸을 잘 쓰셔서 언제나 지휘보는 맛이 남다른데요,
어제는 긴 팔다리 휘저으며 라인 만드실 때엔 제 몸이 붕 뜨는 것 같았고,
4악장 난파 부분에서는 포디움에서 떨어질 듯이 격렬하게 지휘하셔서 눈과 귀를 뗄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데이비드 이 지휘자님이 이제는 강심을 완전히 컨트롤하고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내셨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연주가 계속 되고 마침내 바다와 배를 웅장하게 집어삼키고 마지막 음운이 잦아드는데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기분...
아니, 꿈에서 깬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이야기를 매직카펫에 올라서 듣고 보다가 이제 지상으로 착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내려앉은 마지막 여운.

몇 초간 이어진 깊은 정적 뒤 터진 폭발적인 박수와 객석 곳곳의 감탄.

저 역시 그 감동의 순간에 함께 박수를 보냈습니다.

데이비드 이 지휘자님과 강남심포니는 정말 서로를 빛내주는 최고의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남심포니 단원분들, 데이비드 이 지휘자님.

제 통장과 고막을 기꺼이 바칠 테니 앞으로도 오래도록 행복한 연주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