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를 지나 만난 새벽의 미명
– 강남심포니 제117회 정기연주회 후기


어제 강남심포니 정기연주회를 다녀온 뒤에도 여운이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숨 막히는 무더위와 꽉 막힌 퇴근길을 뚫고 공연장으로 향한 시간이, 그날 밤의 음악으로 충분히 보상받은 특별한 밤이었습니다.

공연 전에는 지휘자님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투표를 보며 작은 기대를 품고 갔습니다.
과연 <셰헤라자데> 4악장의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정말 함성을 지르실까 하는 궁금증이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함성’ 쪽에 한 표를 던졌었습니다.
🤭

공연 전 읽어본 프로그램 노트(채희승 음악학자)의 해석도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셰헤라자데>의 이미지와는 다른 시선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작곡가가 그린 ‘동양’이 당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이국적 상상력이기도 했으며, 구체적인 이야기보다 음악 자체가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설명은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했습니다.
강남심포니는 이 작품을 어떤 이야기로 들려줄까?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공연장은 어느새 현실과 다른 시간으로 변했습니다.
하루의 피로와 마음속 작은 고민들은 음악 속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1부 : 손끝에서 피어난 음표, 그리고 특별한 앵콜


박종해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는 음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무대였습니다.
풍부한 색채와 뛰어난 몰입감 속에서 마치 피아노 주변으로 음표들이 하나씩 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어진 앵콜은 관객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선물했습니다.
라벨의 <토카타>에서는 화려한 기교와 압도적인 집중력을 보여주었고, 두 번째 앵콜에서는 첼로 수석님의 첼로를 건네받아 진지하게 튜닝을 시도하는 유쾌한 장면으로 객석에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이어 첼로 수석님과 함께 연주한 생상스의 <백조>는 우아함과 따뜻한 유머가 어우러진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클래식 무대가 이처럼 친근하고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2부 : 폭풍우를 지나 새벽으로 향하는 항해


2부 <셰헤라자데>는 익숙했던 피겨 음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오케스트라 전체가 만들어내는 깊은 서사와 색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무대 위 지휘자님은 처음부터 관객을 신비로운 아라비아의 밤으로 안내하는 이야기꾼이자, 거대한 오케스트라라는 배를 이끄는 선장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작품의 시작과 끝을 이어 준 객원 악장 태선이님의 바이올린 독주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음색은 마치 셰헤라자데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처럼 느껴졌고, 긴 여정의 처음과 마지막을 연결하며 작품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4악장 후반부의 폭풍우.

지휘자님은 직접 함성을 지르는 대신, 오케스트라의 사운드 자체를 폭풍으로 만들어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강렬한 에너지와 긴장감으로 이어진 그 순간, 실제 함성은 없었지만 객석에는 분명 커다란 환호가 울리고 있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가슴이 터질 듯 뛰었던 것은 음악이 선사한 지극히 아름다운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연주를 들으며 또 하나 깊이 느낀 것은 지휘자와 강남심포니가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서로의 음악을 존중하고 빛나게 해주는 관계가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그 아름다운 호흡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폭풍우가 지나고 곡이 끝났을 때, 분명 시계는 한밤중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제 마음속에는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새벽의 미명’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노트의 해석이 어떠했든, 노트의 마지막 문장처럼 ‘오케스트라가 내어준 술탄의 자리’에 앉아 폭풍우를 지나 미명을 맞이하고 마음의 위로를 얻은 것은 오롯이 듣는 사람인 저의 경험이었습니다.

강남심포니와 데이비드 이 지휘자님, 그리고 무대 위 모든 연주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아름다운 항해 덕분에 무더위로 지친 마음은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음악으로 마음을 채워준 이 특별한 밤을 오래 기억하며, 앞으로의 강남심포니의 항해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