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심포니 119회 정기연주회 후기
작성자 : 이**
2026-10-07조회수 83
**서늘한 가을밤,
라흐마니노프의 감동과 브람스의 쓸쓸함에 대하여 **
2026년 강남심포니의 모든 연주가 너무 만족스러워서 이번 정기연주회 역시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제 올해 정기연주회가 두 번밖에 남지 않았다니, 그 아쉬움 때문인지 어제의 연주는 유독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어제는 A석 앞쪽에 앉았는데, 생각보다 지휘자님이 가까이 보이고 지휘하시는 옆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어 몰입감이 더 컸습니다.
*1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피아노 협주곡에서 늘 상위권을 다투는 곡이죠. 1악장의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오는 순간, 벌써부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한지호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탁월한 테크닉은 물론이고, 곡이 진행될수록 좌중을 압도하는 흡입력이 대단했습니다.
화려한 독주가 주인공처럼 돋보이면서도, 오케스트라의 묵직한 지지 없이는 그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결코 피어날 수 없는데요.
어제 강남 심포니의 연주는 단순히 소리를 얹는 것이 아니라,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같은 숨을 쉬며 서로의 소리를 따뜻하게 받아 안아주는 듯했습니다.
독주자의 화려함이나 오케스트라의 웅장함도 좋았지만, 진짜 짜릿했던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피아노의 마지막 음표가 온전히 피어나도록 오케스트라가 숨을 죽여주고, 오케스트라의 묵직한 선율 위로 피아노가 조용히 마침표를 찍던 순간. 그 짧은 호흡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곡 곳곳에서 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레가토 legato 가 너무나 근사해서, 지휘자님이 레가토에 참 진심이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생도 이렇게 레가토처럼 부드럽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을 들으며 그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 아름답고 감동적인 1부였습니다.
*2부 브람스 교향곡 4번*
보통 "브람스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헝가리 무곡이나 교향곡 3번 3악장을 떠올리곤 합니다.
교향곡 4번은 E단조 특유의 그늘 속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인생을 뒤돌아보는 듯한 곡이라, 개인적으로 자주 찾던 음악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무대 위의 젊은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이 깊은 고독과 절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더욱 궁금했습니다.
이전에 음반으로 접했을 때는 다소 건조하게 느껴졌던 곡인데, 어제 데이비드 이 지휘자와 강남심포니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현의 떨림 하나하나에 생생한 체온을 실어 보내주었습니다.
그렇게 실연의 공기를 직접 마주하고 나니 비로소 이 음악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무대 위의 젊은 음악가들이 브람스의 인생 전체를 모두 경험하지는 않았더라도, 그가 말하고자 했던 감정의 한 조각쯤은 이미 마음에 품고 최선을 다해 전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누구나 마음에 고독이나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고이는 순간이 있고, 그 마음을 가장 깊이 알아주는 음악이 바로 브람스 4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물론 늘 큰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팬이기에 아쉬운 부분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체적인 몰입감과 현악 섹션의 호흡은 인상적이었지만, 단조의 묵직한 음영을 받쳐주어야 할 일부 금관 섹션에서는 밸런스와 디테일이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완벽한 연주였다고 말할 수는 없기에 아쉬움은 분명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이 제게 남긴 것은 꽤 컸습니다.
사실 브람스 4번은 예습으로 몇 번을 들어도 '이 곡을 내가 다시 찾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좋아하는 곡이 아니었던 음악을 다시 듣고 싶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한 번의 연주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라흐마니노프에서는 젊은 연주자들의 뜨거운 숨결에 마음을 빼앗겼고, 브람스에서는 오래된 슬픔과 쓸쓸함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서늘한 가을밤, 강남심포니와 함께여서 오래 기억에 남을 음악의 시간이었습니다.
120회 공연도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