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연구과제들 ‘극심한 성별 불균형’
[일다 2007-04-27 12:15]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연구과제들이 ‘성 평등한 관점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 연구개발사업,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성별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국가 연구개발사업 성인지적 연구는 6.1% 불과
2000년부터 2005년까지 6년 간 보건복지부가 지원한 연구과제 중 성(性)인지적 연구과제는 전체의 6.1%에 불과했고 예산은 3.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가 의뢰해 박진희(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가 진행했으며,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의 여성 수요 반영의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한 기초연구>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민주노동당 한재각 정책위원은 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유럽연합이 2002년에서 2006년까지 진행한 연구개발사업 중 27.4%가 성인지적 관점에서 수행된 반면, 보건복지부의 경우는 6.1%에 불과”하다며, “한국 정부의 연구개발사업에서 성인지적 관점이 크게 결여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를 진행한 박진희 교수는 6.1%라는 수치도, 실제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더 빈약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박 교수는 “연구 과제명과 연구 내용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확한 의미의 성인지적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과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심지어 “성별 데이타를 수집하는 연구에서도 표본집단이 성차이(Gender Difference)를 드러내는데 의미가 있는 자료인지에 대한 언급은 찾기 힘들다”는 것.
이러한 연구결과는, 한국의 연구개발사업에 있어서 아직도 성 인지적 관점이나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가 주요한 평가 잣대로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도 성 인지적으로 검토해야
한국의 경우도 2000년대 들어와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지나친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고, 부족한 과학기술 인력을 충원하자는 차원에서 여성 과학기술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들이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박진희 교수는 “인력확충이라는 즉각적인 양적 지표의 성과에만 한정”하고 있는 점을 꼬집으며, 정작 내용적 측면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국가의 정책이 특정 성별의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성별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연구개발사업 인력 분야의 성비 불균형 문제뿐 아니라 연구비 지급에서도 성차가 존재하는지 점검하며, 그리고 연구의 내용적인 측면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사업의 수혜자인 여성들의 수요와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지, 의학연구 등이 사회의 주류 계층을 표준대상으로 하면서, 정작 치료 대상의 상당 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은 연구에서 배제해온 것은 아닌지 살펴서, 국가 연구개발사업을 검토, 평가하고 있다는 것.
박진희 교수는 한국의 경우도 국가 연구개발사업이 성 인지적 관점으로 재검토되고, 다시 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특히 “배아줄기세포 연구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난자 채취와 연관된 여성건강 문제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라고 꼽았다. 한국 정부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연구개발 과정에서 ‘여성 몸의 대상화’와 이로 인한 여성 건강상의 위험 문제들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성 인지적 관점에서 연구를 평가하거나 재검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로 박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국가 연구개발사업 내용 분석은 현재 우리 사회의 성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토로했다.
‘여성을 위한 연구’ 장려하는 제도적 장치 필요
박진희 교수는 미국, 캐나다, 유럽의 국가들의 제도적 장치 및 가이드라인, 성별영향평가 제도를 사례를 들면서, 보건복지부도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고 성별영향평가를 할 수 있는 틀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 주도로 성별영향평가 지침서가 2005년에야 비로소 마련되었지만, 몇 가지 사업들에 대한 평가작업이 시범적으로 시행되었을 뿐이며, 그 지침서로는 국가 연구개발사업에 적용하기 미흡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89년 미국 의회 감사국에서 보고서를 통해 “여성들이 임상 연구에 체계적으로 포함되고 있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공공보건 정책에서 제외”되고 있다고 지적해, 1990년 미국 보건연구원 산하에 여성건강연구국(ORWH)가 설립하고, 1990년 임상연구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으며, 1993년 이를 법제화했다고 한다.
민주노동당 한재각 정책위원은 “2005년도 통계를 보면,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연구책임자의 여성비율이 늘어 10.9%”라고 전하면서, 그러나 이것은 “여성에 의한 연구개발이라는 측면에서만 일부 개선되었을 뿐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연구인 성 인지 연구개발은 여전히 의제설정도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연구개발 사업 프로필에 성별 통계 포함 ▶국가 연구개발사업 계획에 대한 성별영향평가 실시 ▶사업 지원자 심사에서의 성인지성 ▶여성에 관한 연구를 장려하는 제도적 보장 ▶국가 과학기술활동 보고에 성인지적 관점의 향상 여부에 대한 보고를 의무화 ▶연구개발사업 기획 및 과제심사 등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여성참여비율 확대 등 정책, 제도화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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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윤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