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민여성 지원한다면서 ‘한국문화 강요’
일다 | 기사입력 2007-08-07 03:54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마련한 각종 지원책들의 근간에는 “결혼 이민여성의 한국화를 목표로 하는 동화(同化)주의가 깔려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3일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주관으로 열린 한일 연속심포지엄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본 이주결혼’에서,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이주여성들에게 한국화될 것을 강요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화적 폭력이며, 물리적 폭력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염씨는 정부가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결혼이민여성들의 적응을 지원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방식은 이주여성들의 문화를 존중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를 수용하도록 강요하면서 문화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결국 결혼 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영옥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지자체가 ‘다문화 가족 정책’의 일환으로 펴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한국문화 체험’과 같은 프로그램은, ‘한국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남녀의 성차 이분법과 성차별적 규범을 다시 고착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매매혼 성격의 결혼시장 확대돼
2003년 유엔여성개발기금 UNIFEM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약 2천만 명의 아시아 여성들이 타국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들의 이주가 날로 증가하는 “이주의 여성화”에 대해 한국염씨는 ‘대부분 가사노동이나 제조업 등 전통적인 성 역할에 따라 일자리가 배치’되고 있고, ‘여성의 몸이 상품화되어 국제결혼과 성 산업으로의 이주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6년 혼인통계 결과’를 보면, 작년 외국인과의 혼인은 총 3만9천7백 건으로 2000년 1만2천3백 건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이중에서 한국남성과 외국여성의 혼인이 3만2백 건을 차지해, 한국여성과 외국남성의 혼인 9천5백 건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2006년에 혼인한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한국남성 8천596명 중 41.0%에 해당하는 3천525명이 외국여성과 혼인해, 전년보다 5.1% 증가했다.
한국염 대표는 국제결혼중개업체들이 내걸고 있는 현수막이나 안내문과, 맞선 과정의 인권침해적 요소들을 예로 들며,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한국남성과 제3세계 여성 간 결혼’이 “결혼시장에 의한 매매혼 성격”을 띠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중개업체들이 한국남성들에게 국제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한국보다 비교적 성 평등 문화를 가지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여성을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테면 베트남 여성을 “순종적이며, 나이 차이에 구애 받지 않고 순결하다”고 소개하는가 하면, 몽골여성은 “모성애가 강하고, 부모님 모시길 좋아한다”, 필리핀은 “영어권이므로 2세 교육에 유리하고, 일부종사하며 절대 이혼하지 않는다”고 선전하는 등 “가부장적인 한국남성들의 구미에 맞게 포장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결혼중개업체들은 한국남성과 외국여성의 결혼을 성사시켜야만 이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남성의 직업을 “일용직은 건설업으로, 무직은 자영업으로 바꾸는 식의 허위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 성 평등이 관건
한 대표는 국제결혼중개업체의 선전과 결혼중개의 방식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국제결혼 이주여성을 “돈 주고 사온 여성”이라는 이미지로 생각하도록 만들었으며, 실제로 이주여성과 결혼한 한국남성들도 아내를 ‘동등한 배우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이주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 폭력과 인권 유린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올해 여성가족부가 ‘결혼 이민자 실태조사’를 진행해 보고한 결과를 보면, 여성결혼이민자의 17.5%가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43.6%는 출신국보다 한국의 여성지위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경우 2005년에 하루 두 명꼴이었던 상담이 2006년에는 하루 세 명꼴로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3분의 1이 가정폭력 상담이다.
물리적 가정폭력만이 아니라 배우자 ‘유기’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한다. 한국염씨는 한국남성이 아내를 ‘유기’한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하나는 ‘여성의 나라에서 결혼식을 하고 합방절차를 마친 뒤, 남자가 한국에 돌아와서 아내를 초청하지 않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한국에서 같이 살다가 남성이 집을 떠나버리거나 이혼을 종용한 경우’다.
지난 4월 대법원 등기호적국의 “국제혼인 현황”을 보면, 국제결혼 이혼율이 2003년 1.6%에서 2006년 4.9%로 3배 이상 늘었다. 특히 농촌의 이혼율이 도시보다 높은데, 매매혼적 결혼방식과 문화적 갈등, 언어로 말미암은 의사소통의 단절이 원인으로 꼽혔다.
한국염씨는 다문화가족이 안정되려면 매매혼적 국제 결혼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고, 성 평등한 다문화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 사회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혼이민여성을 한국 문화를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나 복지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중문화의 정체성을 가진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민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Copyrights ⓒ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부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