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관:강남구여성능력개발센터

 

[월경은 월경이다-④]알아서 배우고, 사고, 고통받고..여성 누구나 40년씩 겪는데, '개인 문제'로 치부

[편집자주] 밥을 먹으면 똥을 눕니다. 그게 '섭리'입니다. 그걸 에둘러서 '항문으로부터 기어이 빠져나오는 배설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월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은 누구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무척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런데 대관절 왜, 월경은 '그날', '마법'이란 말에 숨어야할까요.
똥을 누려면 휴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화장실엔 늘 휴지가 있습니다. 월경을 하려면 생리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왜 생리대는 어디에나 있지 않을까요.
이 기획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월경은 월경입니다.

 

서울 강남구 은광여고에 설치된 '비상용 생리대' 자판기. 학생들 누구나 언제든, 필요한만큼 가져다 쓸 수 있다. 우려와는 달리, 생리대 오남용도 없었다./사진=강남구청

 

갑작스레 '월경'이 시작됐다. 주기가 달라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랐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녔다. 대비를 못하고 있었다. 생리대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 됐다. 10분 내에 해결해야 했다. 14살 이다정양(가명)은 4층서 1층까지 뛰어내려갔다. 학교 보건실에서 생리대를 받을 참이었다. 문이 잠겨 있었다. 난감했다. 다시 올라왔다. 친한 친구 두 명에게 물었다. 월경 시기가 아니라 했다. 돌아다니며 물을 순 없었다. 그럴 순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휴지를 썼다.

힘든 수업 시간이 다시 지났다. 축축하고 불안했다. 다음 쉬는 시간에, 보건실에서 생리대를 겨우 구했다. 집에 오니, 이양의 어머니는 "그러게 잘 챙겨 갖고 다녔어야지"라고 나무랐다. 이양은 대비를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그 뒤론 가방에 항상 생리대를 챙겨가지고 다니게 됐다.

인구 절반이, 40년동안 하는데…'개인 문제'로 치부

이양의 사례는 뭐가 문제였을까.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월경은 여성 누구나 한다.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략적인 주기는 알지만, 정확히 예측할 순 없다. 내 몸을 둘러싼 여러 상황에 따라, 빨라지기도 하고, 늦어지기도 한다. 이양이 대비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니 그가 선택한 게 아니다. 여기까진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럼 생리대가 없는 상황은 누구 잘못일까. 보건실이 잠시 잠긴 게 잘못일까, 아니면 이양이 항상 가지고 다니지 않은 게 잘못일까. 여기서 이양과, 그의 어머니는 후자를 택했다. 어쩔 수 없이 터진 월경에 대해, 생리대를 못 챙긴 '개인 잘못'으로 화살을 돌린 것이다.


월경은 정말 '개인 문제'로만 여겨져야 할까. 특정 여성만, 특정 시기에 겪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월경은 인구 절반에 달하는 모든 여성이, 평균 만 11세부터 50세까지, 매달 꼬박꼬박, 40년간 겪는 일이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불가피하게, 꾸준히 겪는다. 그런 이유로, 개개인 몫으로만 돌리긴 어렵다. 개인이 겪는 문제이면서, '사회 문제'인 것이다.

특히 월경으로 인해, 다양한 기본권이 침해 받을 수 있단 측면에선 더 그렇다. 월경 통증이 경미한 사람도 있지만, 하루종일 못 움직일 정도로 심각한 이도 있다. 노동권, 학습권, 이동권 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숨어서 조용히, 알아서 해결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돼 왔다.

생리대 언제든 쓸 수 있게…강남구의 '실험'

서울 강남구 소재 진선여중에 설치된 생리대 자판기./사진=강남구청


국가가 개입해온 건, 저소득층 청소년에 한해, 생리대를 지원하는 정도였다. 생리대가 필요한 건 진정 가난한 아이들 뿐이었을까.

강남구는 여기에 물음을 던졌다. 여성의 건강권·기본권이란 측면에서, 좀 더 폭넓게 접근했다. '당당하고 건강한 생리'란 사업명을 붙였다. 그리고 여성 누구나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는, '생리대 자판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학교 뿐 아니라 공공기관까지, 총 98곳에 206대를 설치했다.

시행 초기에 학교에선 반신반의했다. 누구는 "개인 위생용품을 갖고 다니는 것도 교육"이라 했다. 마구 쓰고 버릴 거란 우려도 있었다. 강남구 내 69개 학교 중, 48개 학교에 136대를 설치하는 데에만 꼬박 1년이 걸렸다. 강남구청 직원들이 학교마다 다니면서, "아이들이 학교서 눈치 안 보고, 휴지처럼 뽑아쓰도록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설득했다.

생리대도 휴지처럼, 필요할 때 뽑아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강남구청의 사업 취지였다./사진=강남구청 홍보포스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강주연 주무관은 "학생들이 정말 필요할 때만 썼고, 오남용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예산을 9억원 정도 잡았는데, 절반이 남을 정도였다. 정말 필요할 때만 쓰는, 생필품이었던 것이다. 비싼 생리대를 대량 구매하니, 저렴한 가격에 들여올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현장에 방문해 학생들 반응을 살펴보니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어 정말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보건실에 가면 이름을 적는데, 예민한 청소년 시기 아이들에겐 곤혹스런 일이기도 했다. 부족한 쉬는 시간에, 보건실까지 왔다갔다 할 필요 없이 가까운 화장실서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강남구는 월경 관련 교육도 함께 진행했다. 생리대를 잘 쓰는 방법도 고민하잔 거였다. 일반 생리대, 찜질팩, 면생리대 등을 통틀어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알려줬다.

월경 보편지급 논의, 시작됐지만 '지지부진'

서울시 여성 청소년 916명을 대상으로 한 월경용품 관련 설문 조사. 학생들이 학교 내 월경용품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사진=서울시 월경용품 보편지급 운동본부

강남구 뿐 아니라, 지자체 단위에선 월경용품 보편지급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서울시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모든 서울지역 여성 청소년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기 위한 조례(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대해 서울 지역 청소년(11~19세) 916명 중 83.9%가 "매우 긍정적"이라 답했다. 이유로는 △경제적 부담(40.5%)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일이어서(32.1%) △저소득층만 지원할 경우 낙인 효과 문제(10%) 순이었다.

하지만 실제 정책 실행은 지지부진하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단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선심성 수당이란 논란도 있고, 코로나19 때문에 재정 여건이 안 좋아 합의와 논의를 거쳐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구로구도 지난해 10월,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모든 여성 청소년에게 월경용품을 지급할 수 있는 조례안을 통과시켰지만 정책 시행은 아직 요원하다.

국가가 '월경'에 대해 신경쓴단 의미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국가가 여성으로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이 겪는, 월경에 대해 보편적인 지원을 한다는 건 단순 물품 지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저소득층에 한정된 지원은 어쩔 수 없이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단 측면이다.

문희숙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경기부천 과장은 "저희가 복지 제도 안에서 많이 지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만나보면 '이 가정은 사각지대일 수 있겠구나', 그런 사례가 항상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문 과장은 "정부 복지제도란 게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아동과 청소년만큼은 전체적으로 보장 받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월경에 대한 인식의 개선 효과도 있다. 서울 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 조례를 마련한,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생리라고 하는 게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다 보니, 안 좋은 걸로 보여지거나 놀림 대상이 되거나하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했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사회가 월경을 지원하고 인정해준단 느낌이 들어 월경하는 여성의 몸을 더욱 긍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해외 각국에서도 월경권 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지난 3월,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월경용품을 지급하는 법안이 압도적인 찬성표로 의회 1차 표결을 통과했다. 영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월경용품 지급을 시작했다. 미국 뉴욕주는 2016년 공립학교, 노숙인 쉼터 등에 월경용품을 배치했다.

※기사 수정 이력
오전 6시10분 표출 당시 제목은 <갑자기 터진 생리…'학교 보건실'은 잠겨 있었다>였으나,
시작됐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단 독자님들 의견에 공감해
오전 7시40분에 <갑자기 시작된 생리…'학교 보건실'은 잠겨 있었다>로 수정했습니다.
앞으로 표현에 더 주의를 기울여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전 9시20분에 <생리대도 '휴지'처럼…성공한 강남구의 실험>으로 다시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기사 취지와는 달리 제목 때문에, 학교에 계신 보건교사님들에 대한 문제 지적처럼 보여질 수 있단 점에 깊이 공감합니다. 코로나19로 현장서 고생하시는 보건교사님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걸 계기로 힘든 부분이 없으신지에 대해서도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월경은 월경이다' 기획은 이번 4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꾸준히, 이 문제에 대해 관심 갖고 들여다보겠습니다. 제보는 human@mt.co.kr로 편히 주세요. 그동안 기사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남형도 기자 올림.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출처:https://news.v.daum.net/v/20200602061004282?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