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호 희망을 말하다
헤럴드경제|기사입력 2007-12-31 11:21 |최종수정2007-12-31 23:45
산이 거기 있기에 갔을 뿐, 우리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1등’은 대단하지만 ‘1호’는 더 값지다. 서서히 허물어져 가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숨은 ‘금녀의 벽’은 견고하기에 여러 1호 중에서도 ‘여성 1호’의 의미는 특별하다. 체력은 물론 정신력으로 무장하고 그 벽을 넘어선 이들의 2007년 성취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 그들의 2008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해 거둔 큰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작’이라고 입을 맞춘 듯 말하는 박윤선 심판과 하정미 대위. 대한민국 여성 1호로 2007년을 맞은 그들의 2008년을 들어본다.
▶남자 프로농구 첫 여성 심판 박윤선 심판
“올라가야 할 곳이 거기인 것 같아서요.”
‘왜 산에 오르냐’는 질문에 영국의 전설적 등반가 조지 말러리(George Mallory)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나는 산에 오른다’고 답했다. 남자 프로농구 무대에 선 첫 여성심판 박윤선(35) 심판 역시 ‘왜’란 질문에 위와 같이 답했다.
활발하고 털털한 박윤선 심판이지만 갓 넘어선 자신의 지난해를 뒤돌아볼 땐 의외로 담담하다.
“여자 농구와 다른 점이요? 선수들이 여자라는 거죠, 뭐.” 말은 쉽다. 그러나 ‘여성 1호’의 수식을 달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프로농구의 심판이 되기 위한 체력 테스트만 봐도 알 수 있다.
32초 이내에 농구 코트 길이인 28m 구간을 세 번 왕복해야 하는 것은 기본. 신호에 맞춰 20m 구간을 92회 주파하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코트 위에서 수행해야 하는 심판의 역할이란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테스트 내용도 다를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성과 마찬가지로 체력은 하나의 벽. 그러나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니었다. 박 심판은 공채를 준비하면서 매일 12㎞를 달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하면서 꾸준히 체력 훈련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그 어떤 여성도 밟지 못한 남자 프로농구 코트에 섰다. KBL 출범 11년 만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정규리그 심판으로 데뷔한 것. 안양에서 열린 KT&G-KTF전을 진행하며 한국 농구 역사를 다시 썼다.
“어떤 경기든 설레고 긴장되긴 마찬가지겠죠. 저 역시 시범경기나 연습경기를 충분히 뛰었는데도 마냥 떨려서 실수도 했습니다. 하지만 12월의 두 번째 경기는 한결 매끄러웠습니다.”
박 심판도 코트에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은 선수로서였다. 덕성여고를 졸업한 1991년 상업은행에 입단해 2년 동안 포워드로 뛰었다. 이후 사회체육센터 농구 강사와 생활체육농구연합회 행정실장을 거쳐 2002년부터 4년간 여자 프로농구에서 심판으로 활약했다.
“남자 프로농구 심판이 되기 위해 준비한 시간은 2~3년이에요. 남자와 여자는 몸이 다르기 때문에 한순간에 체력이 어느 수준으로 올라오는 게 아니거든요. 여자 농구에서 심판 보면서 따로 시간을 내 훈련을 해야 했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게을리한 순간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원했던 일이기에 요즘 수련 심판으로 받는 빡빡한 교육과 오후의 경기 관전이 재밌기만 하다. 물론 모두가 선수도 심판도 스태프들도 모두 남자인 코트 위인 만큼 여성으로서의 소외감을 느낄 때도 많다. “경기장에서 옷을 갈아 입을 땐 조금 민망하죠. 여자 탈의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 게 아니니까요. 선배들의 배려로 제가 옷을 갈아입을 땐 모두 나가주세요.” 앞으로 그의 뒤를 잇는 후배들이 많아지면 당연히 바뀌어야 할 것들이다.
2년간의 짧은 선수생활이 그에겐 심판으로서는 시작하는 신호였듯이 KBL의 1호 여성심판의 자리로 만족하며 머물진 않을 생각이다. 5월 시즌이 끝날 때까지 5번 정도 경기에 나간 후, 7월부터는 다시 새로운 시즌을 준비한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 저일 뿐이지, 마음만 있으면 못할 게 있을까요. 심판이 되는 관문을 통과했지만 지금 제 자리에서 한발한발 체력이 닿는 데까지 올라가는 게 제 목표입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내년에 꼭 이뤄져야 할 일 중 하나다. “운동선수들이 털털한 반면에 꼼꼼하고 소심해요. 남자친구들은 많지만 애인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이유죠. 하지만 좋은 인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겐 가장 중요한 게 일이니까 아무래도 제 일을 이해해주고 적극적으로 외조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소박하면서도 알찬 박윤선 심판의 2008년 바람이다.
▶KF-16 첫 여성 전투조종사 하정미 대위
“‘최초’라는 수식어를 넘어 ‘최고’의 조종사가 되기 위해 첫 걸음을 떼는 한 해가 될 겁니다.”
대한민국 군 사상 최초의 여성 KF-16 전투조종사 하정미(28) 대위가 2008년을 맞는 다짐이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하정미 대위는 지난해 11월 1년 여에 걸친 고난도 KF-16 기종전환 훈련을 마치고 ‘여성 KF-16 전투조종사 1호’ 타이틀을 달았다. 2002년 공군이 최초의 여성 조종사를 배출한 지 5년 만에 거둔 성과. 이를 통해 하 대위는 한반도에서 가장 빨리 날 수 있는 여성이자 막강한 정밀유도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여성으로 이름을 올렸다.
KF-16은 첨단 항공전자장비, 무장운용능력과 함께 탁월한 기동성을 가진 공군의 주력 전투기다.
고성능 전투기인 만큼 체력이나 정신적으로 견뎌야 하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다. 특히 KF-16의 조종석은 9배의 중력가속도(9G)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자리.
“임무 중 기동성 및 선회성능을 높이기 위해 스틱을 당기면 내 몸무게의 9배가 나를 누르는 것과 같은 힘이 느껴지죠. 일반적으로는 피가 아래로 쏠리면서 뇌의 혈액이 부족하게 되고 시야가 어둡게 되다가 의식상실에까지 이를 수도 있습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그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L-1기법이라는 호흡과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죠.”
공군은 여성 조종사들의 기량과 체력, 정신력, 공중 지휘능력 등을 지난 4년간 검증하고, 2006년 기종전환 조종사 선발 시부터 여성 조종사들에게 KF-16의 문호를 열었다.
하 대위는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한 꿈과의 거리를 한 발씩 내디뎌 가면서 현실로 좁혀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빨간 마후라의 열정을 흠모했고, 공군사관학교 때는 KF-16의 잘빠진 몸매에 반했거든요.”
하지만 하 대위 스스로는 최초라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른 조종사들과 같은 위치에서 같이 걷는 것뿐이기에 ‘여성 최초’라는 수식이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초’란 단어는 ‘절대적 소수’라는 말과 일맥상통하죠. 아직 여성 조종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환경 면에서든 작전적인 면에서든 제약이 따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깨뜨려 후배들이 이 길을 갈 때 걸림돌이 없게 하는 것 또한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기종전환 훈련을 마쳤을 때 ‘이제 정말 시작’이라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2008년은 그에게 더 의미있는 한 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SOC(초급 지휘관 참모 과정)를 통해 장교로서의 소양을 기르는 것과 동시에 비행기량 향상에 주안점을 둘 것입니다. 훈련 때문에 소홀했던 운동도 다시 시작할 겁니다. 2008년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아닌 최고의 조종사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을 떼는 한 해로 만들고 싶거든요.” 내년 가을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결혼도 중요한 내년 계획의 일부다.
자신을 보면서 전투조종사가 되고 싶어하는 여성들에게 하대위는 과감히 도전하고 마음껏 꿈꾸라고 권한다.
“전투조종사는 내 젊은 시간을 온전히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매력적인 분야예요. 환상만 갖는 것은 위험하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지레 포기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입니다. 정말 전투조종사를 꿈꾸는 후배라면 누구든 파란 하늘에서 더 멋지게 그 날개를 펼 수 있을 겁니다.”
윤정현 기자(hit@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