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여성 리더십’탐사
수잔 손택
자유·지성으로 시대 이끈 ‘문화 아이콘’


예의 길게 내리뜨린 검은 머리와 이마에서 뒤로 빗겨 넘긴 하얀 머리카락, 또렷한 눈빛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수잔 손택(Susan Sontag)의 모습은 자유와 지성이 신비하게 공존하는 문화적 아이콘이다. 그렇게 그녀는 미국 사회에서 영화배우도 인기가수도 아닌 작가로 40여년의 세월 동안 대학 강의실, 대중잡지, 대중매체의 목소리로 ‘스타’의 명성을 쌓아올리며 미국인의 자존심을 대변해왔다.

그녀는 역사 이래 최고의 자본주의 제국을 건설해가는 미국의 국가 정책에 도전하며 일개 작가로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국가의 정책보다 개인의 양심이 더 옳고 강할 수 있음을 실례로 보여주기도 했다.

한 여성의 깨어 있는 의식이 어찌도 그리 큰 반향을 남기며 세상에 도발할 수 있었을까? 수잔 손택의 리더십은 바로 지성인의 책무를 용기 있게 실천하는 데서 발견된다. 그녀의 리더십은 문화 면면이 파고들어 시대인의 의식을 선도했다는 데서 더 강력할 수 있다.

첫째, 비범함과 성실함의 리더십이다. 그녀는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여성이다. 여기에 그녀는 평생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았던 성실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지독한 독서광으로, 죽기 직전까지 1만5000권의 장서를 보유했었다. ‘진지하자, 열정적이자, 깨어 있자!’는 그녀 자신을 일깨웠던 삶의 좌표다. 이러한 태도는 그녀가 뛰어난 외모, 시카고대학과 하버드대학이라는 화려한 학벌을 배경으로 평판을 유지한 마스코트가 아님을 입증한다. 그녀가 글을 통해 유럽의 지성들, 벤야민, 아르토, 바르트 등과 대화하며 시대의 지성으로 일컬어질 수 있었던 저변에는 그녀의 삶에 대한 성실하고 치열한 자세가 전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자기를 극복하는 데서 오는 리더십이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했으나 각고의 노력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 인간에게서 성실함과 숭고함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한 인간으로, 그리고 한 여성으로서 불행으로 굴곡진 삶의 고비마다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를 키운 어머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독자는, 특히 여성 독자는 자매애를 통감한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모친을 닮지 않기 위해 평생 4시간의 수면을 삶의 규칙으로 삼고 금욕적인 생활태도를 견지하였다. 인생의 위기가 찾아온 것은 17세에 했던 결혼이 8년 후 이혼으로 끝난 지점이다. 그녀는 남편이 제안한 양육비를 거절하고 이곳저곳에서 강의를 하고 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고집스럽게 어린 아들의 고단한 생계를 책임졌다.

또 다른 위기는 40세 무렵 유방암에 걸려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진단을 받으면서 찾아왔다. 그녀는 2년 이상의 힘든 방사선 치료를 감당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은유로서의 질병’이란 글을 발표한다. 그녀에게 고난은 스스로를 더욱 성장시키는 계기였고, 그녀는 고난 자체를 질료로 삼아 삶을 다시 설계했다.

셋째,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고 즐길 줄 아는 데서 오는 리더십이다.
그녀는 전통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으며, 이를 실천한 여성이다. 그녀가 남긴 17권의 저서들은 소설, 수필집, 희곡으로 그녀의 다양했던 관심사를 반영해준다.

특히 수필을 통해 그녀는 기존의 학술서가 담아낸 진지한 내용을 쉽고, 자유롭고, 명쾌하게 표현하면서 전통적인 비평적 글쓰기로부터 벗어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 넘기를 유유히 시도했다. 포르노그라피가 문학일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에서처럼 전통에 대해 의심하고 도전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와 실천력으로 인해 그녀는 대중의 의식을 선도했다.
그녀의 열정과 감성은 다양한 영역에서 발휘되는데, 관습을 거부하면서 남이 생각지 못한 지적·양식적 도발을 그녀는 서슴지 않았다. 연극 연출과 영화 제작 등 자신의 한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영역을 넘나들었다.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쓴 2편의 희곡은 금세기 최고의 연출가 로버트 윌슨이 연출함으로써 화제를 낳기도 했다.


넷째, 시대를 읽고 앞서는 혜안의 리더십이다.
그녀는 미국 사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할 수 있는 몇 사람 중 하나로 여겨져왔다. 정치가는 시대를 읽음으로써 지배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시대를 읽고 선도할 수 있을까? 그녀는 글을 통해 의식의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시대를 읽고 선도했다. 글을 통해 그녀가 다룬 대상은 바로 당대 문화이며, 보이지 않는 의식의 문제였다.

그녀는 시대의 감성을 정확히 꿰뚫고, 문화의 능동적인 참여자이며 구성자로서 선두에 선다. 그녀의 영화 연출은 바로 영화야 말로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술형태라는 자각에서 시작했다
그녀가 발표한 일련의 글들은 통념을 타파하는 독창성과 시대를 선도하는 사유의 결과물이다. ‘과장적 태도에 대해’(1964년), ‘해석에 반대하여’(66년), ‘스타일에 대해서’(69년)는 60~7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문화 속에서 대중문화를 진지한 담론에 담아 성찰하는 전기를 마련한다. ‘사진에 대해서’(77년) 역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사진을 문명의 이기로 간주하면서도 대상이 결국 응시자에 의해 소비되는 두 측면을 동시에 간파하여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사진술에 대해 정의 내린다.

이처럼 이성보다는 감성, 내용보다는 형식, 가능성보다는 불가능성을 우선시하는 그녀의 관점은 현대문화의 핵심적 요소다. 그녀의 발언과 행위는 이전엔 시도되지 않았던 현대문화에 대한 기술이며, 담론적 근거를 제공하게 된다.

다섯째, 문화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국제적인 리더십이다.
그녀의 삶은 누구보다 사회의 모순을 용기 있게 비판할 줄 아는 지성적 삶의 전형으로 주목받을 만하다. 그녀는 서구문화, 특히 제국주의 형태의 미국의 군사력과 그 야만성을 소리 높여 비판한 지식인이다.

그녀는 여성문제, 시민권문제, 미국의 베트남 참전문제 등 국내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여했을 때는 베트남을 방문하고 ‘하노이 여행기’를 발표하여 북 베트남인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을 조성하고, 반전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긴 전쟁으로 마비상태에 있던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여 굳게 닫혀 있던 국립극장의 활동을 재개하게 하였고, 89년 펜클럽 회장으로 있을 당시에는 이란의 호메이니와 회교 근본주의자들의 살해 위협에도 불구, 살만 루시디를 조건 없이 옹호했던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또한 9·11사태 때에는 과거 미국의 공습으로 야기된 이라크의 인명 살상을 상기시키며 9·11사태를 “자유세계와 인간애에 대한 비겁한 공격”이 아닌 “자칭 세계 최고의 권력국가에 대한 응징”으로 표현하여, 야만적 행위라는 매스컴의 규정에 대해 또 다른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그녀의 타 문화에 대한 진실된 배려를 보여준다. 그녀는 모든 문화가 차이가 있으며, 하나의 관점으로 단순화시키기에는 문화 자체가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미국 중심에서 벗어난 그녀의 발언은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마저 긴장시키는 권위를 갖게 된 동시에 자국의 이해를 넘어 진정 옳고 그름을 책임지는 지성인으로서의 리더십을 창출하게 된다.
종래의 리더십은 체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상대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에 토대를 두어왔다. 수잔 손택의 리더십은 감성적, 미학적, 개인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그녀의 리더십은 삶과 개인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국가와 사회에 대해 개인의 존재를, 지배권력에 대해 피지배자들의 존엄성을, 집단 이데올로기에 대해 개인의 양식을 웅변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한다.

문학·예술에서 사회운동까지… 전방위로 활동한 대표 지성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 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등 현란한 수식어로 불렸던 수잔 손택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독자적인 안목과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소설가와 극작가, 예술평론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등 전 방위 예술에서 활동하면서 실천적 사회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그는 1960년대 학계에 등장해 2004년 12월 골수백혈병으로 사망하기까지 4권의 평론모음집과 6권의 소설, 3권의 에세이, 4편의 영화 시나리오, 2편의 희곡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불우한 어린 시절 속 빛난 지성

수잔 손택은 1933년 1월28일 뉴욕의 중산층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재혼한 어머니와 계부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민함을 보였다. 15세인 48년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했고, 이듬해 시카고대학으로 옮겨 51년 졸업했다. 17세 때인 50년 시카코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젊은 사회학도 필립 리프와 결혼, 52년 아들 데이빗을 낳았으나 58년 이혼했다.

아이를 낳은 후 55년 하버드대학 철학박사 학위과정에 들어가 57년 학위를 받은 후 유럽으로 건너가 옥스퍼드와 소르본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60년부터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기고활동을 펼치다, 63년 첫번째 소설 ‘은인’을 발표하면서 미국 문단에 데뷔했다.

‘투명성’의 독자적인 윤리학

66년 내놓은 문화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는 학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여기서 그는 현대의 비평들을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가하는 잔인한 호전적 행위”라고 비판하며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반짝임을 보자, 더 잘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감수성을 회복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스스로를 ‘진지함의 광신자’라고 부르며 나름의 독자적인 윤리학을 펼쳤다. 미학에서부터 정치, 사회 현안에까지 그가 주장했던 윤리적 개념은 ‘투명성’으로 표현된다. “대상을 접할 때의 생생한 감각을 중시하자”는 독창적인 주장으로 쓰인 글들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반전·인권운동가로서의 삶

수잔 손택은 많은 작품뿐 아니라 실천적인 운동가로서도 주목할 만한 삶을 살았다.

60년대에는 미국의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한창이던 93년 4월 사라예보를 방문, 전선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극장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 사건은 유명하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공인들이 대중을 바보로 만들려고 한다. 우리 모두 슬퍼하자, 그러나 바보는 되지 말자”고 호소하며 부시 정권의 외교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이름이 국내에 알려지게 된 것은 88년 국제팬클럽 미국 지부회장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 노태우 정부에 김남주 시인 등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하면서부터. 또한 작가 샐먼 루시디 구명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촉구

이러한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관통하는 그의 신념은 ‘타인에 대한 배려’였다.

아버지를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폐암으로 여의었고 평생 세차례 암과 싸워야 했던 그는 78년 발표한 ‘은유로서의 질병’을 펴낸다. 여기서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임에도 불구, 학자나 작가들이 만들어낸 병에 대한 은유적 이미지가 환자들의 질병에 대한 투쟁을 방해하고 있다”며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질병을 바라볼 것을 요구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출간했던 유작 ‘타인의 고통’에선 수많은 전쟁 사진들이 어떻게 전쟁의 고통을 추상화하고 미화하면서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현대사회에 결부되고 있는지, 그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는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은 똑같이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외쳤다.

소설 속에 나타난 페미니즘

소설가로서의 그의 삶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63년 발표한 첫 소설 ‘은인’은 비평가들로부터 카프카와 사무엘 베케트의 초기 실험작을 연상케 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첫 희곡인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은 그의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여인의 초상’의 작가인 헨리 제임스의 누이동생으로서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앨리스 제임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그는 지적 재능을 가진 여성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 사회를 비판했다.

그는 에세이 ‘사진에 관하여’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소설 ‘미국에서’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고,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상도 받았다.

그러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평생 병마와 싸워야 했던 그는 말년에 오랫동안 백혈병으로 고생하다가 2004년 12월28일 뉴욕의 어느 암센터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956호 [세계] 최영주 / 연극평론가, 드라마 트루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