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정대웅 / 여성신문 사진기자 (asrai@womennews.co.kr)

지속발전 가능한 여성정책의 비전은 무엇일까.
2010년, 즉 새 천년 10년,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에 사회·교육과 문화·여성·경제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한국 사회에 일어날 주요 변화와 함께 그 대안과 비전에 대해 들어본다.

여성정책의 미래, 여성의 행복체감도에 달렸다
일·가족 양립, 여성경제활동참가율 증가는 현재이자 미래 과제

여성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수장 김태현(사진) 원장은 이를 “지속발전 가능한 성평등 사회의 실현”으로 구체화한다. 2008년 8월 취임 당시 여성정책이 핵심 전략으로 꼽은 “젠더 파트너십의 실효성 강화”는 여성정책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지지, 그리고 백래시를 최소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으로도 읽힌다.
그는 여성정책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로 “왜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안 할까”와 “왜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10년간 50% 언저리에 계속 머무를까”란 두 가지 의문점을 꼽는다. 때문에 일·가족 양립 이슈가 향후 가까운 미래에도 주요 여성정책 화두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의 여성정책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이러한 여성정책의 발전이 “현실적으로 여성의 행복에 충분히 적용이 안 돼 있기에 법과 현실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성평등 체감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를 위해 여성정책연구원은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 지난해 10월 ‘생활의제발굴단’을 모집, 운영했는데, 그 결과 예상 외의 큰 호응과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김 원장의 표현대로라면 이런 것이 바로 “‘알맹이’를 채워가는 작업”이다.

여성문제, 남녀별·세대별·연령별로 통합 접근해야

-취임 당시 여성정책이 뒷받침해야 할 핵심 과제로 ‘지속발전 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내세우셨다. 이를 구체화해 실현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여성정책에 관한 한 한국의 제도와 법은 선진국 수준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왜 여성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주부들의 우울증과 자살률은 세계적 수준이다. 결국 법과 현실의 격차를 줄여야 하고 생활 속에서 여성 행복을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예전에는 법과 제도에 굉장히 많이 치중했다. 대표적 성과가 호주제 폐지다. 그런데 그 성과가 너무 큰 나머지 ‘여성들이 이제 무엇을 더 바라느냐’ ‘남성부나 남성정책연구원 등 이젠 남성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라’ 등의 백래시도 만만치 않다. 반면, 비정규직 여성, 빈곤 여성,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은 여전히 많다. 때문에 제도와 법을 요란하게 키우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정책을 생산하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최근 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차별 법안이나 생활의제발굴단 등이 그 구체적 예가 될 수 있겠다. 성차별 법안의 경우 다수의 법학자를 투입해 국회에 상정돼 있거나 정부가 입법예고한 2994개 법안을 모니터링했는데, 그 결과 사소한 법률 조항 하나라도 성평등하게 수정하면 우리 생활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을 절감했다.

성별영향평가 기초로 국가성평등지수 개발, 여성지위 상승을

-지금 현재 트렌드에서 정책적 수요가 가장 많다고 판단되는 주제는 무엇인가.

“역시 일·가족 양립 정책이 가까운 미래까지도 상당 기간 주요 정책 화두가 될 것 같다. 일·가족 양립 정책에 인프라가 구축되면 또 다른 이슈가 나타날 수 있지만. 최근 노동부에서 단시간 사용 직업상담원을 모집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직업상담원은 하루 근무 시간은 5시간을 넘지 않으면서도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월급, 호봉, 복지, 승진 등에서 정규직과 별 차이가 없는 ‘상용 단시간 근로제’ 형태다. 우리나라엔 아직 낯설고 또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여성 일자리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받고 있지만, 유럽 특히 네덜란드에선 워킹맘을 위한 일자리의 70% 정도가 이 같은 형태라고 들었다. 이런 것이 바로 일·가족 양립 정책의 인프라를 깔아주는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도 이미 맞벌이 부부가 가족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책적으론 여전히 전업주부 위주이기에 워킹맘을 배려한 정책 생산이 중요하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으려 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 결혼 후에도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 행복하고, 경력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으며, 아이를 낳고도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이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여성정책연구원의 ‘삶의질전략단’에 집중한 1본부·3실·1전략단의 최근 개편이 향후 여성정책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또 과거와 달리 ‘젠더’ ‘성주류화’ ‘성인지’ 등의 명칭이 들어간 조직이 거의 없다.

“원장직을 시작하면서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이를 원의 연구과제에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정책의 대국민 홍보 전략도 포함한 조직개편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엔 두 가지 트랙이 있다. 국민에게 남성과 여성을 아울러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 또 좀 더 국민에게 다가가는 체감형 정책을 찾아내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주고, 반영해주는 것이다.

‘일가족정책연구실’의 경우 여성의 경제력이 확보돼야 여성 지위가 올라가고 여성 자신의 삶도 주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무엇보다 근래 10년간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50%대에 머물고 2030세대 여성들의 경력단절이 서구에 비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등사회통합연구실’을 만든 것은 성평등이 와야 하고, 동시에 계층의 통합, 연령의 통합도 와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여성을 전체의 몸통으로 보고 여성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여성만을 타깃팅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전제에서다.

반면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집중해 성인지나 성별영향평가를 연구하는 기존 조직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개편했다.”

-여성정책연구원에서 개발 중인 국가성평등지수가 향후 정책 전반에 미칠 영향을 말해달라.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삶의 질 제고란 측면에서 여성부 위탁 과제로 진행 중인데, 곧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여성이 발전해왔고, 성불평등 현실도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국제적 통계로는 하위권에 속해있는 것 역시 현실이다(여성권한척도GEM 105개국 중 61위 성격차지수GGI 134개국 중 115위). 때문에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성차별을 근원적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개발한 국가성평등지수는 우리 사회 어떤 영역에서 성차별이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찾아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성차별이 어떤 영역에서 더 심하고 덜 심한지 구체적인 현황을 알아야 상황을 개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작업을 위해선 성별영향평가가 기반이 돼야 한다.

성차별 현상 개선을 위해선 구체적인 자료가 나오고 이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대는 것, 특히 선진 사회의 예를 들어 설득하는 것이 주효하다.

인간친화적 에코시티로 가야
노인 소외된 정책은 낙제점

-최근 보도됐지만, ‘행복지수’ 개발이 상당히 난항에 부딪친 것 같다. 과연 행복지수 개발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또 이것이 개발된다면 현실에서 어떻게 정책에 응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행복지수를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나 자료는 다 모아져 있고, 최고통치권자인 대통령의 의지 역시 강력하다. 그러나 결단이 필요하다.

국민은 실제 국민총생산(GNP)의 단계보다도 더 낮게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한국의 경제발전 속도와 전혀 맞지 않게,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유난히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행복지수를 개발해 우리의 행복지수는 어느 지점에 와 있다, 어떤 면에서는 행복하고 그렇지 않다, 이런 판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밝혀지면, 아무나 그냥 무조건적으로 ‘난 행복하지 않아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겠는가. 구체적으로 행복지수를 발표해 세계 속에서 우리 행복지수는 이 정도인데, 낮은 건 어떤 거니까 이를 높이자고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행복지수는 굉장히 복합적이다. 과거에는 군사력이, 이제는 GNP라는 경제력이 국력인데, 이미 그 국력의 척도가 인간복지와 행복으로 넘어가고 있다. 여기엔 경제력뿐만 아니라 환경, 고용, 소득, 교육, 문화, 주거, 안전, 여가 등의 항목을 다 넣어야 한다. GNP에는 아시다시피 이런 구성 요소는 없다. 문제는 이들 다양한 지표 중 무엇을 반영하고, 무엇에 더 가중치를 두어야 할 것인가다. 가령, 안전 항목에 대해 조금 더 가중치를 주고자 하면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거다. 따라서 가중치에 대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순조롭게 조율해 행복지수가 발표되면 우리나라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가 함께 높아지면서 곧 소득 3만 달러 시대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에코 시티’를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여성정책은 사실 여성학, 여성운동에 많은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초기엔 여성권익을 얻어내기 위해 투쟁에 주력했다. 이젠 전 세계적으로 에코 페미니즘으로 가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 것이 바로 ‘에코 시티’인데, 이는 서울시의 ‘여행(女幸)’ 프로젝트 이후 단계, 즉 ‘인간친화적’인 도시 개념이다. 이 에코 시티에는 여성과 남성이 모두 포함된다. 여성을 위한 정책만 만들고, 여성을 위한 거리만 만드는 것을 넘어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지속가능하고 편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구성원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 지역사회, 노인, 아이, 남성 모두와 여성이 소통해야 하고, 이것이 바로 에코 시티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령화 사회, 특히 여성 노인들의 문제가 심각하다. 향후 여성정책의 주축에서 이 부분을 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정책연구원에서 지난해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2010년 행복한 가족을 위해 가장 필요한 여성정책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노인’ 관련 가족정책을 가장 주력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치매 등 노인문제로 인해 부부갈등이 격화되고 아이들이 가출하는 등 가족 해체로까지 번질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의 여성정책은 너무 젊은 사람 위주였다. 똑같은 한 여성이 정책의 혜택으로 젊었을 땐 행복하다가 노인이 돼서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부조리하다. 그래서 여성문제는 생애주기별로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또 여성의 평균수명이 82세가 넘어가는 고령화 사회에선 노인을 대략 65세부터 100세까지로 하나로 뭉뚱그려 묶어보면 안 된다. 연령별로 좀 더 세분화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가령, 요즘 같은 경우 75세까지는 비교적 건강하게 일하니까 일자리를 위한 교육훈련과 지원에 초점을 맞추지만, 80세 이후 심신이 미약해지면 양로원, 요양원, 노인용품 등 실버산업을 활용해 돌봄 서비스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이젠 자식이 아닌 국가가 효자가 돼야 하는 시대 아닌가.”


김태현 원장은

1950년생으로, 2008년 8월 13일 제12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 가족학을 전공, 성신여대 가족문화소비자학과 교수, 심리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OECD 세계포럼 준비위원회 위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인문사회과학분과 집행위 위원, 여성부 정책자문위 위원, 서울시 여성위 위원,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이사 등으로 활약 중이다. 한국여성학회·한국가족관계학회·한국가족상담교육단체협의회 회장, 경제ㆍ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와 공공기관운영위 위원 등을 역임했다. ‘여성복지론’ ‘현대가족복지’ ‘양성평등이 보장되는 복지사회’ 등의 공동저자로 참여한 바 있다.

1073호 [경제] (2010-03-12)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pleun@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