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성 가장들 “일하고 싶어요”
[우먼타임즈 2007-04-28]
여성 노동자들의 현주소
80%가 구직 활동…직장 구하기 하늘에 별따기
그나마 일터 구해도 최저임금도 못미쳐 생활고
올해는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20주년을 맞는 해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 인구는 지난 20년간 큰 폭으로 늘었고, 1995년엔 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 내 성희롱 조항이 삽입됐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노동시장 자체에 대한 진입 장벽 ▲정규직 진입 장벽 ▲대기업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우먼타임스는 117주년 노동절을 맞아 노동현장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의 삶을 살펴봤다.
두 명의 자녀를 둔 주부 김문진(가명·54·서울 은평구 갈현동)씨는 노동부 워크넷을 비롯한 각종 취업정보 사이트를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인터넷 사용법은 더 많은 일자리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얼마 전 딸아이로부터 배웠다.
“여상을 졸업하고 운송회사에서 경리직 사원으로 4년쯤 일하다가 23살에 결혼하면서 그만뒀어요. 지금 이 나이에 일자리를 구하려고 이렇게 안달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남편은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서른을 넘긴 아들은 몇 년째 실업자 신세다. 그나마 돈을 버는 건 2년 전부터 은행의 계약직 사원으로 창구영업 일을 하는 딸뿐이다. 평생 모은 돈은 몇 년 전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사라진 지 오래고, 약간의 빚도 있는 상태다.
노후를 보장할 재산도 없고 자식들에게 기댈 수 있는 형편도 아닌 만큼, 김씨는 정말로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식당에 나가 설거지도 하고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돌보는 일도 해봤지만, 결국엔 자신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번번이 밀려났다.
하지만 김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축에 속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실직·빈곤여성 564명을 대상으로 전국 9개 지역에서 진행한 상담 통계 자료에 따르면, 50세 이상 중·고령 여성들의 80% 이상(50대 80.5%, 60대 90.9%)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한 중·고령 여성의 42.8%는 평균 80만원 미만의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으며, 65.5%는 가구 월소득액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중 채무로 인해 신용불량 상태에 놓여 있는 비율도 11.7%나 됐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실장은 “2003년까지만 해도 일자리를 원하는 여성의 비율이 30대에서 높았는데 이후부터는 가정경제의 후퇴, 남편의 실직, 자녀들의 실업 등으로 노후를 보장할 수 없게 된 50대 이상의 중·고령 여성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구직 희망 비율 역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구직을 희망하는 중·고령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데 반해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일자리도 최저임금과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몇십 년간 전업주부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해온 중·고령 여성들을 위한 직업훈련 과정도 찾아보기 힘들다.
임 실장은 “구직을 원하는 중·고령 여성들에게 그나마 연결해줄 수 있는 게 간병인, 보육인, 장애인·노인 지원 등의 사회 서비스 일자리인데, 이 역시 제한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성 생계부양자를 중심에 둔 일자리 마련 정책만이 아니라 생계 때문에 취업 시장에 나설 수밖에 없는 중·고령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 개발이 필요한 때”라며 “만약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여성의 빈곤화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세옥 기자 ksk@iwomantimes.com
현장에선 아직도 막말·성차별
인격·호칭 무시 사업장 여전히 많아
함께 일하는 일터 평등문화 조성 시급
#1 전 직원이 30명 남짓한 A회사의 대표는 지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 CEO다. 여성 근로자 2명을 구해달라는 구인 신청을 받고 여성희망일터지원본부(이하 본부)에서 구직자 중 상담을 통해 선발한 사람을 소개했다. 2명이 압축되어 결정되는 듯하더니 회사 측에서 한 명은 미혼이라서 안 되겠다고 했다. 보통 직원 채용 시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는 거절 사유는 들어봤지만 미혼이라서 안 된다는 말에 의아해 하면서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사 담당자는 난감해하면서 얼마 전 그만둔 여성 근로자에 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얘기인즉, 제조업체인 A회사의 작업은 2교대가 불가피한 실정인데 미혼인 그 여직원이 밤중에 함께 작업하면서 남자 사원들이 던진 농담(?)에 민감하게 반응해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작업장 분위기를 흐려 놓아서 결국 그 여사원을 해고했다는 것이다.
#2 44세의 이혼녀인 B씨는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절박한 처지로 기계부품 업체에 생산직으로 취업했다. 그런데 현장을 담당하는 C과장이 자신에게만 유독 까다롭게 굴었다. B씨는 동료 여성 근로자들에게 고충을 털어놓았다가 뜻밖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거 관심 있다는(?) 신호 아냐? 뭐 한 번 만나주지 그래.”
굴욕감과 두려움,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 사직서를 내고 새로 직장을 구해달라며 본부를 찾아왔다.
#3 30세의 미혼인 D씨. 전 직원 30여 명 중 여성 근로자가 3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자동차부품 조립 회사지만 통근버스가 있어서 다행이라면서 출근했다. 그러나 3일 만에 본부로 다시 찾아와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회사에서 10시간 이상 근무할 때도 있는데 화장실을 못 가니 괴롭다는 것. 회사에 있는 유일한 화장실을 남녀가 함께 사용해야 하는 것이 불편해 참다 보니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미혼 여성인 그녀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남자 직원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서 화장실 가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4 올해 47세인 E씨는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 여사’란 호칭이 쑥스러워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제조업체 생산직으로 취업하면서 아예 이름을 잃어 버렸다. 남자 직원들이 많은 현장에서 “어이, 아줌마!”라고 불리는 순간, 자신이 바닥에 떨어진 느낌이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알파걸(학업과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자에 뒤지지 않는 엘리트 소녀들)이 판치는 시대에 이게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5000여개의 중소기업과 공장이 밀집해 있는 시화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곳에는 사무직, 전문직 여성보다는 근무 여건이나 작업 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여성 근로자가 훨씬 많다. 본인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전업주부로 있다가 늦게나마 가계에 보탬이 될 겸 자신의 일을 찾아 취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도 많다.
이런 여성들이 접하는 영세 제조업체의 현실에서는 근로자의 권익이나 복리 증진이라는 말이 딴 세상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 남자 직원들이 성희롱인지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외설적인 농담을 하는 현장 분위기, 이에 항의하면 함께 어울리기 힘든 사람으로 낙인 찍혀 해고당하고, 여성가장으로서 힘겨운 삶을 꾸려가는 여성에게 약점을 들춰내 상처 주는 상사, 이름 대신 ‘아줌마’로 부르는 비인격적인 사업장이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요즘처럼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영세한 규모의 업체일수록 직원 복지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또 직원 수가 적다 보니 가족처럼 허물없이 지내게 되어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가 불분명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녀가 함께 일하는 일터에서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업무에 임할 수 있도록 여성들을 평등한 인격체로 대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직률도 낮아지지 않을까? 규모가 작은 생산 현장일수록 인력에 대한 투자는 기업의 생산성에 직결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남녀가 함께 어울려 일하고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사업장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생산직에도 여성 관리자들을 양성하여 여성 근로자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성희롱 예방교육(현재는 강사 교육이 아닌, 마지못해 교육 홍보지 열람으로 대체하는 수준) 의무화를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일하고 싶은 직장,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터를 만드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임을 하루빨리 깨달았으면 한다.
김수영
여성희망일터지원 본부장
입력시간 : 2007-04-28 [3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