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내기 화환 허영 주렁주렁

[우먼타임즈 2007-04-14]

꽃가게-행사기관 ‘뒷거래’
행사 끝나면 화환 수거
리본만 바꿔 다시 팔아
멀쩡한 꽃 그대로 폐기


한 유명인의 장례식장에 늘어서 있는 근조화환. 10만원이 넘는 고가의 화환들은 도착한 지 1~2시간 만에 되팔리거나 폐기된다.
대한민국은 화환 공화국이다.
결혼식장, 병원, 각종 행사장마다 3단 화환들이 커다란 리본을 두른 채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보내는 이의 이름이 적힌 화환은 ‘그곳에 내가 함께 했다’는 생색내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화환은 크고 화려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인식 때문인지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10만~15만원 선이 보통이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후 고가의 화환들은 행방이 묘연해진다. 상당수는 행사가 끝나는 순간 쓸모가 없어지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바로 폐기되거나 행사장 관계자에 의해 재거래된다. 몇 십 만원을 호가하는 화환들이 1시간 뒤 어디로 사라지는지, 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추적해봤다.

지난 3월 30일 오후 3시, 서울시내 B서점 이벤트홀.
한 유명 스타의 사인회가 열리고 있는 이곳으로 하나 둘 화환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점 관계자는 화환이 도착하기 무섭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화환 처리를 요구했다. 행사가 끝날 무렵 꽃가게 종업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 화환을 모두 수거해 갔다. 서점 관계자와는 평소 친분이 있는 눈치였다.
서점 관계자는 “가뜩이나 복잡한데 화환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며 “자주 왕래가 있는 근처 꽃집에 전화를 하면 화환들을 수거해 간다”고 말했다.
수거 비용은 따로 없다. 이들이 수거해 가는 화환 자체가 공돈이기 때문이다.
배달 온 직원은 “근처 큰 행사장이나 호텔 등에서 화환을 수거해 가라는 연락을 받는다”며 “기관과 친분이 있어야 수거 연락 전화를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작은 규모의 꽃집은 이런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투였다.
이렇게 수거된 화환들은 군데군데 일부 시든 꽃을 빼내고 새 꽃을 꽂아 리본만 바꿔단 뒤 다시 새 화환으로 탈바꿈한다.
전문 기사가 만든 3단짜리 화환은 10만원을 기준으로 마진이 2만~2만5000원인데 비해 재활용한 화환은 마진율이 85% 이상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화훼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화훼 재배를 하도록 돼 있는 하우스촌이 시든 꽃 몇 개만 바꿔 달아 화환을 다시 만드는 소위 재탕집으로 변하면서 일부 꽃집에서 화환을 시중가보다 2만5000~3만원 싼 가격으로 유통시키고 있다”며 “마진율이 워낙 높다 보니 날로 하우스촌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원, 호텔 등 대형 기관과 꽃가게와의 비공식적인 계약도 성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웨딩홀이 있는 특급호텔의 경우 매일 밀려드는 화환을 도매 꽃집에 개당 1만~1만3000원에 재거래한다. 예식장소로 유명한 K, W호텔은 한 달 기준으로 1500~2000개의 화환이 수거되고, 1500만~2600만원의 추가 수입이 발생한다.
일부 업체들은 월간, 혹은 연간 로비 자금을 내고 화환을 수거한다.
서울 서초동에서 꽃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화환을 받치는 나무 받침대 가격만 하더라도 5000~7000원 하기 때문에 화환을 수거해 오면 짭짤한 이익이 생긴다”며 “화환 수거는 웬만한 인맥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수 백 만원의 로비 자금이 오가는 건 업계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일”이라고 말했다.
재활용되는 화환은 그나마 괜찮다. 어쨌거나 돈을 지불하고 화환을 구입한 사람의 마음이 잠깐 동안이나마 전시되기 때문.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폐기되는 화환도 상당수에 이른다. 수명으로 따지면 5분 미만이다. 정·재계 인사들의 빈소가 자주 차려지는 서울 강남 S병원에서는 한두 개의 화환만 전시하고 나머지는 리본만 떼어내 빈소 벽을 따라 진열한다. 수십, 수백 개의 화환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이 같은 방법을 쓰는 것. 리본에 써 있는 이름으로 누가 다녀갔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화환 대신 리본을 전시하고 있으니 리본 값이 10만원인 셈이다.
리본을 뗀 화환들은 따로 야외에 마련된 분쇄기와 압축기를 통해 폐기 처분한다.
S병원 빈소 담당 관계자에 따르면, 리본만 떼고 처리하는 화환의 수가 하루 80개 이상이다. 이 관계자는 “화환을 받지 않는다는 공지를 해도 사람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화환을 보내기 때문에 이 같은 방법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역시 하루에 천만 원어치가 넘는 화환들을 도착하자마자 폐기 처분하는 것은 심각한 낭비라는 데 공감하고 있는 듯했다.



이재은 기자 lje@iwomantimes.com




백혈병 환자 돕는 아름다운 기증

한사랑후원회‘화환기증 운동’

“아깝게 폐기 처분되는 화환, 백혈병 환자들을 위해 기증하세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산하 한사랑후원회는 화환기증운동을 펼치고 있다. 화환기증운동이란, 행사장에 잠시 전시돼 있다 바로 폐기되는 화환을 수거해 백혈병을 앓고 있는 환아들의 치료비로 사용하는 것이다.
대형 병원, 예식장, 호텔 등에서 전시되는 화환의 주인이 화환 기증 서류를 작성해 보내면 후원회 관계자들이 화환을 수거해 간다. 이렇게 수거된 화환을 도매 꽃집에 개당 1만~1만5000원을 받고 되팔아 이 비용으로 환아들을 돕는다.
한사랑후원회에 미리 연락해 기증서를 작성하고, 화환이 전시되는 행사 날짜와 장소,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면 화환 수거부터 청소까지 모두 책임진다.
하지만 일부 유명 기관과 화환 업체 간의 검은 커넥션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매달 화환 수거 거래를 통해 수 천 만원의 추가이익이 발생하는 만큼 업체 관계자들로서는 화환기증운동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문종호 한사랑후원회 사무국장은 “특히 화환이 많이 들어오는 결혼식의 경우 기증 의사를 밝히는 부부들이 많지만 호텔, 예식장 관계자들과 마찰을 빚는 일도 종종 있다”면서 “그러나 화환의 주인은 업체 관계자가 아니라 축하를 받는 사람인 만큼 당사자가 기증 의사만 확실히 밝히면 업체 측도 결국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한사랑후원회는 화환 기증서를 작성하는 사람에게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문의 : (041)554-1242



입력시간 : 2007-04-14 [31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