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생명 살리고 ‘제대혈 기증식’눈길
[우먼타임즈 2007-06-09]
탁틴맘 주도 임산부 60명 보라매병원에 제대혈 공여
임신부 60여명이 백혈병 등 난치병 치료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는 제대혈 기증을 약속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이들은 임산부 시민단체 ‘탁틴맘’ 주최로 오는 6월 14일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에서 열리는 국악 태교 콘서트에서 제대혈 공여 서약서를 서울시립 보라매병원 공여제대혈은행에 전달할 예정이다.
탯줄 혈액인 제대혈에는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 등 혈액세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많이 들어 있는데, 이를 보관해 활용하면 기증자가 적은 골수이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특히 골수이식의 경우 6개의 조직적 합성 항원(HLA)이 일치해야 하는데 비해 제대혈은 4개 이상만 일치해도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어 손쉬운 치료가 가능하다. 국내 백혈병 환자 3명 중 2명이 자신에게 맞는 골수를 찾지 못해 사망하는 현실에서 제대혈은 또 하나의 ‘생명자원’인 셈이다.
제대혈은 또 버려지는 태반과 탯줄에서 잔여 혈액을 채취하는 것이므로 아기와 산모에게 어떠한 영향이나 고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 해 동안 보관되는 제대혈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탁틴맘 측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또 다른 사람을 위해 제대혈을 기증하는 것은 난치병의 치료와 연구, 생명공학 발전에 기여하는 일일 뿐 아니라, 아기와 부모에게도 평생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아 사회공동체 의식과 기증문화 확산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서약식에 앞서 열리는 ‘임산부 세상 콘서트’에서는 전통음악 공연단의 태교음악 연주와 전래 자장가 듣고 배워보기 행사가 진행된다.
김세옥 기자 kso@iwomantimes.com
난치병 환자에 제대혈 기증 약속한 민은서씨
“제대혈 공여는 또 다른 의미의 출산”
“제대혈 공여가 무슨 대단한 결심이라고 여기까지 오셨어요.”
6월 1일 서울 상도동의 한 아파트. 문을 열고 기자를 맞는 민은서(33·사진)씨의 얼굴엔 쑥스러움이 가득했다.
임신 9개월째. 한껏 부른 배를 안고 자리를 권하는 민씨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출산을 한 달여 앞두고 있는 민씨는 최근 임산부 시민단체 ‘탁틴맘’을 통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보라매병원 공여제대혈은행에 제대혈(탯줄혈액) 기증을 약속했다.
백혈병, 혈액암 등 난치병 치료에 효과적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인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일종의 보험처럼 제대혈을 보관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비율은 전체의 10% 수준. 그냥 버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저나 남편이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제대혈을 보관해두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럼 버리는 건데 어차피 버리는 거라면 필요한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말했더니 남편은 물론 시부모님께서도 좋은 일이라며 동의해주시더군요.”
민씨는 “한 해에 버려지는 제대혈이 수십만 개인데 이것들만 제대로 모아도 국내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를 거의 갖출 수 있다고 들었다”면서 “내 아이를 낳으면서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니 그야말로 멋진 일 아니냐”고 말했다.
임신 이후 입덧과 태동을 경험하면서 뱃속에 생명을 품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실감하게 됐다는 민씨는 제대혈 기부 결정이 전혀 특별한 게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자신만이 하는 유별난 일이 아닌데 인터뷰까지 하게 되니 창피할 뿐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민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혈 공여를 적극 권한다. 자신 역시 예비 엄마들의 인터넷 모임에서 제대혈 공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생각을 굳힌 만큼 마찬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많은 임신부들이 제대혈 공여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긴 해요. 버리지 않고 자기 가족을 위해 보관한다 하더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십수년 후에 그냥 폐기된다는 사실을 알거든요. 그러느니 공여를 하는 게 좋다는 걸 알긴 하는데 막상 하려니 귀찮은가 봐요.”
국내에서만 한 해 평균 3500명 정도의 혈액암 환자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들이 골수 기증자들에게 기증을 요청했을 때 거부율은 70%에 이른다. 제대혈을 통한 조혈모세포 이식이 절실한 상황이다.
민씨는 “아직까지 공여나 기증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만큼, 우선은 제대혈 공여자가 늘어나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며 “제대혈을 기증한 아기에게 1회 정도 해당 병원의 무료 진료권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다른 것보다 아기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져요. 그런 마음으로 제대혈을 기증해 누군가가 삶을 되찾는다면 그것 역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출산 아닐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아기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민씨의 생각이다.
김세옥 기자 kso@iwomantimes.com
입력시간 : 2007-06-09 [3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