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적은 여성?…적엔 성별이 없다
헤럴드 생생뉴스 | 기사입력 2007-06-12 09:15
“걔는 실력은 안 되면서 상사한테 애교만 떨더라”, “얼굴에 손 안 댔다고 하더니 다 고쳤더구먼, 뭘”부터 “품행이 나쁘다”, “왠지 얄밉다”까지. 가벼운 뒷말이 확대된다. 한편에선 “여자가 남자보다 더 해”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 말들은 주로 여자들의 입에서 출발한다. 젊은 여성들일수록, 또 여성이 많은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일수록 그런 말을 많이 오가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 진정 여자의 적은 여자인가.
TV 드라마 속에서도 그렇다. 남의 남자를 가로챈 여자, 가정을 깨뜨린 여자, 여자를 괴롭히는 여자…. 동화 속도 들여다보자.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콩쥐팥쥐와 장화홍련 등 착하고 예쁜 주인공에게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은 하나같이 계모나 이복자매들 아닌가. 다시 한 번 여자의 적은 여자? 지난해 취업포털 ‘커리어’가 여성 직장인 14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가운데 86.5%가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이런 것을 절실히 느낄 때로는 ‘여자 동료를 뒤에서 험담할 때’(37.3%)가 가장 많았고, ‘동료라고 믿고 비밀을 말했는데 소문이 났을 때’(22.5%), ‘중요 업무를 여사원을 못 믿어 남사원에게 시킬 때’(19.8%), ‘여팀장이 여사원들을 무시할 때’(17.4%) 순이었다.
대기업에 갓 입사한 L씨는 실제 “여자 상사가 평소엔 편하게 대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일을 시킬 때는 남자 직원을 먼저 찾는다”며 “그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실망은 배신감으로 변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돌이켜보자.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생리적으로는 여성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남성인 여성을 발견한다. 단순히 말투가 씩씩하고 겉모습이 남자 같은 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지고 권위주의적인 남성성을 가진 여성 말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 지목되는 여성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이다. 한 전자회사에서 일하는 J씨는 “정작 뼈아픈 체험은 좀더 세련된 의식으로 포장한 듯하면서도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 편승하려는 여성들에게서 받는다”고 말한다. 결국 문제는 그 여성 자체가 아니라 그에게 스며든 남성성, 가부장성의 문제로 돌아간다.
또 여자는 질투가 많고 남의 이야기하기 좋아한다고들 하지만 모함하기, 편가르기 등 남자들의 특기는 어떤가.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여자 부장 P씨는 “오히려 연줄에 연연해하지 않아 밀고 끄는 관계가 끈끈하지 않은 여성들이 승진이나 성과에 있어 더 쿨하다”고 말한다.
어차피 직장생활의 무대는 놀이동산이 아닌 정글이다. 정글의 법칙에 충분히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 뿐. 암묵적으로 고정돼 있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편견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보다 활발해지며 섬세한 리더십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확실한 것은 ‘적에는 성별이 없다’는 사실이다.
윤정현 기자(hit@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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