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여성학 “대중속으로”

[우먼타임즈 2007-06-16]

된장녀 논란·여성 자기계발서 문제등 사회이슈 중심 연구 변모

한국여성학회 제23차 춘계학술대회가 지난 6월 9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여성학의 쟁점과 젠더질서의 재편’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처음으로 대학원생 분과가 생겨 영 페미니스트들의 참여가 이전보다 높았던 이번 학회에서는 ‘한국 여성의 자유배낭 경험을 통해 본 주체성 변화에 관한 연구’, ‘고학력 비혼 여성의 독신문화에 관한 연구’, ‘동방신기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을 중심으로 살펴본 30대 기혼 여성들의 문화정치학’ 등 여성 이슈를 흥미롭게 다룬 주제의 논문들이 발표됐다. 배은경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교수는 “10년 전 X세대라 불리며 사회적 관심을 모았던 세대들이 IMF를 겪은 경험을 살린 논문들을 발표해 어느 때보다 흥미로운 학술대회였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날 발표된 30여편의 논문 중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던 논문 두 편의 내용을 소개한다.

△싱글 여성, 그들이 정말 된장녀일까?
20~30대 여성 싱글 집단을 일컫는 단어인 된장녀, 화려한 싱글, 골드미스. 이 중 싱글 여성들은 된장녀 논쟁에서 과소비를 일삼고 서구 지향적이라며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과잉 소비로 자본주의 논리에 순응하고 전통적인 성 규범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실제 싱글 여성들의 소비 행태는 어떨까. ‘20, 30대 고학력 싱글 직장 여성들의 소비정치학’이라는 논문을 쓴 모현주(연세대 사회학 석사)씨가 16명의 20, 30대 싱글 직장 여성들을 심층 면접한 결과, 적게는 월 10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 이상을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지출은 연봉 2400만~3600만원인 사람이 월 70만~150만원, 연봉 3600만~6000만원인 경우에는 월 150만~350만원이었다. 저축은 보통 월 50만~150만원 하며 펀드, 개인연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목돈을 모으고 있었다.
이들의 주요 소비 영역은 패션, 음식점과 카페, 해외여행, 운동과 자기교육비다. 어렸을 때부터 자아실현 욕구가 강하고 남성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는 여성상을 학습하며 자란 이 세대는 소비생활에 익숙하고 문화와 글로벌 감수성과 욕구가 강하다는 게 모씨의 분석이다. 그는 “연구 결과 여성들은 현재를 버티고 생존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소비를 하며, 특히 글로벌과 문화에 욕구가 강한 이들은 해외여행과 쇼핑, 요가, 자기계발 등과 같은 첨단 소비 트렌드를 빠르게 수용한다”고 말했다. 즉 현재 상황에서 살아남고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소비력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된장녀 논쟁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모씨는 “근대는 여성들을 일터로부터 소외시키기보다 소비자로 부상시키는 전략을 택해놓고, 남성 중심적인 여론이 여성들의 소비를 비판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된장녀 논쟁을 넘어서 싱글 여성들에 대한 좀 더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성 자기계발서에 숨은 불편한 논리
‘여자생활백서’,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는 지난해 교보문고 ‘올해의 베스트셀러’에 각각 14위와 17위를 기록한 자기계발서다. 20~30대 싱글 여성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읽히고 있는 자기계발서에는 어떤 불편한 논리가 숨어 있을까.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자기계발은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부상했다. 이에 대한 기대는 자기계발서 출판 붐으로 이어졌고, 지난 한 해 동안만 자기계발 분야의 도서 판매량은 90% 이상 증가했다. 특히 남성 독자는 전년 대비 2배 증가했고 여성 독자는 4배 증가했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여성들은 IMF 이후 고용불안과 취업난을 피부로 느끼는 세대다. 이들은 남성들에게 위협적이지 않으면서 노동시장에서 제 몫을 해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여성 자기계발서의 내용을 분석하고 9명의 20대 여성 독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정가영(연세대 사회학과 석사)씨는 “현재 나와 있는 여성 자기계발서들은 여성스러움을 무기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라고 강조한다”며 “책 속 여성들은 세속적 욕망과 여성으로서의 자존감 사이에서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만 수용,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경제적으로 우월한 남성을 포섭하는 것을 여성의 성공으로 설정하면서 ‘여성다운 태도’를 동원하라고 장려한다고 덧붙였다. 자기계발서가 여성들을 주체적으로 그리긴 하지만, 결국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주의를 부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정씨의 결론이다.



글·사진 채혜원 기자 chw@iwomantimes.com


입력시간 : 2007-06-16 [322호]